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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천천히 가는 것도 좋다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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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30  15: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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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리고 점점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 영하의 계절이다. 벌써 추운 겨울이 다가온 것 같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찬바람이 가을을 떠나보내고 겨울을 재촉한다. 노랗고 붉은 빛깔로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던 단풍잎이 마른 가지에서 떨어진다. 길 위에 떨어진 잎사귀들이 저마다 다른 웃음을 띤 채 나뒹구는 모습에서 마지막 가을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뒤숭숭해진다. 겨울의 초입에 다가오는 추위가 삶에 지쳐 길가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착잡해진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바람소리가 존재의 나팔소리처럼 들려와서 마지막 가을을 보내는 마음이 외롭지만은 않다. 가로수 길에 쌓여 있는 낙엽을 밟는 발걸음이 유난히 푹신하고 편안하다.

인간은 평생 자신이 망가질까봐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성공은 희귀하지만 실패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실패한 사람을 보면서 자신 혼자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며 스스로 위로받는다. 사람이 위로받을 때는 자신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만날 때라고 한다. 이런 마음속에는 타인의 고통과 비교하여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 안도하는 인간의 지극히 여린 마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울면 외롭지만 함께 울면 참고 견딜만하다는 말은 어쩌면 당연하다.

인생의 절반을 지났을 법한 이 순간 지나간 날과 다가올 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간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은 필요하지 않은 일들을 내려놓고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을 제공한다. 비워지는 분량만큼 다시 채워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진되어진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 삶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의 요즘은 지난 과거의 잔해를 비우는 것과 미래의 소망을 채우는 것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따라서 비움과 채움을 통해 새로움을 준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지난여름 필자는 가족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올해의 이벤트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여 스스로 자신에게 선물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지나간 몇 개월을 뒤돌아보면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거나 값진 경험이나 추억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회에 참가 신청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한강고수부지에서 땀 흘리며 달리는 순간 삶의 에너지가 샘솟는 신선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주말이면 가끔 아들과 함께 한강을 달리며 모처럼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더욱 감사하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땀 흘리며 달리는 순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천근만근 다리가 무거워지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지라도 반환점을 돌아 골인지점을 향할 때는 어떠한 고통이라도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달리는 거리와 시간에 비례하여 고통이 배가되지만 스스로 느껴지는 희열은 더욱 크다. 주변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맘껏 즐길 수 있으며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매력적이다. 자신의 속도에 맞게 천천히 달리며 주위를 살펴보는 여유를 가질 때만이 기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땀을 흘리며 고통을 참고 견디며 달리는 순간 오직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찾을 수 있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삶을 가볍게 보낼 필요는 없지만 때로는 천천히 느리게 걷고 달리며 여유로운 사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나름 좋은 일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집착하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존재의 소중함을 천천히 산책하면서 다시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다. 이제까지 제한시간을 초과하여 달리는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버스가 주는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직 골인지점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느라 후미에서 고통을 참으며 천천히 걸어가고 뛰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릴 여유조차 없이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자신의 능력에 맞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뒤에서 굉음을 울리며 다가가는 버스처럼 살아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천천히 뛰면서 주위를 돌아보고 마주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어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에서 진정으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힘들어진 삶에 지쳐 길가에 주저앉은 이웃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건네주는 일이 진정 우리가 꿈꾸는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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