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온 세상이 야위었다. 가을걷이 끝난 들판은 허허롭고 가로수는 마른 가지만 앙상하다. 낙엽도 지고 사랑도 지고 추억도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 무심천을 흐르는 물살과 살갗을 스치는 찬바람만 세월의 덧없음을 웅변한다. 아쉬움과 미련이 왜 없겠냐만 자연은 이 모든 것을 부려놓는다. 새 날을 위해, 새 희망을 위해 가던 길 마저 가야한다며 묵언수행이다.

마음이 쓸쓸할 땐 도시의 풍경이 그립다. 삶의 여백에 그 풍경을 담고 싶다. 그날 성안길에서 책구경, 거리구경, 사람구경을 했다. 그리고 씨어터제이에서 열린 한국 발레사의 전설 이상만 출판기념행사에 잠시 들렀다. 유난히 올해는 춤과 관련된 행사에 자주 다녀온다. 대한민국무용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춤 공연을 여러 번 구경했다.

발레리노 이상만이라는 인물을 접하는 순간 앙가슴 뛰기 시작했다. 그는 1948년 11월 괴산군 청안면 부흥리에서 태어났다. 국립발레단 1세대로 서구 발레단에서 활동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대한민국 춤의 거장 송범 선생의 후예다. 그는 <지젤>, <코펠리아>, <카르멘> 등 20여 편의 발레 주연을 맡았다.

그에겐 멈출 수 없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 그가 출연하는 무대는 직접 디자인 하고 그림을 그렸으며 무대의상과 소품을 만들었다. 하나 하기도 힘든데 이 모든 것을 다 소화하다니 놀라웠다. 2014년 1월 8일 66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어 밤마다 춤의 나래를 펴고 있으리라. 지난해 송범에 이어 올해는 이상만이라는 춤꾼을 조명하는 사업에 뛰어든 송범춤사업회에 박수를 보낸다.

사실 나는 청안지역의 빛나는 콘텐츠를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청안 출신의 극작가 한운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년이 작고 10주기다. 또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던 황창배 화가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림 그리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 이곳은 세종대왕이 1444년에 조세개혁을 단행하면서 시범도입한 곳이었으며 유교와 인문콘텐츠가 풍부했다. 그래서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조화로운 멋진 신세계를 꿈꾸는 중이었다.

이런 와중에 발레리노 이상만을 만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망라한 최고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 가득하다. 한운사, 황창배, 이상만 모두 세종대왕의 위대한 후예들이다. 춤과 노래와 그림과 영상과 글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확신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지난번 전국무용제 기간 중에도 느낀 것이지만 이왕이면 우리 고장이 춤의 도시가 되면 좋겠다. 말로 다 할 수 없고,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 말과 글의 무위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이 몸짓이다. 몸짓은 정직하다. 뱀의 혀가 아니고, 펜의 힘도 아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의 샘물을 길어 올리는 행위다. 그 몸짓이 춤이라는 예술이 되었을 때는 더욱 정직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놓는다. 그래서 춤은 최고의 언어이고 예술이며 자연이다. 삶이고 경전이며 철학이다.

춤의 무대는 언제나 아름답고 숭고하며 건강하다. 경쟁의 시련에서 상생의 미덕으로 가는 길이다. 서로가 하나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음악과 디자인, 영상과 디지털 등 다양한 장르가 만난다. 시대의 정신을 담고 삶의 이야기를 반영한다. 꿈을 꾸게 한다. 춤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예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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