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사촌 언니네 집에 놀러 가면, 언니는 항상 재즈를 듣곤 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음에도 언니는 집이나 차안에서나 항상 재즈를 듣기 때문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나도 재즈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난 재즈가 너무 좋아.” 라는 언니에게 “뭐가 그렇게 좋아?” 라고 하자 “너무 멋있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계속 강제로 듣다보니 처음에는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좋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는 들어도 혼자 있을 때는 절대 듣지 않았다. 혼자 재즈를 듣고 있으면 재즈가 전해주는 외로움이 너무나 강력하게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재즈의 시작은 17세기 말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 잡혀간 흑인노예의 자손들이 아프리카 민속음악의 감각을 필드 할러라는 단순한 서글픈 노래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다가 교회의 찬송가를 비롯한 유럽음악의 영향을 받아 흑인 특유의 감각을 반영한 흑인영가·워크송(노동가)·체인갱송(쇠사슬에 묶인 죄수의 노래) 등으로 발전하였다. 19세기 말 노예해방이 선언되고, 흑인들이 자유의 몸이 되자 자신들의 삶의 아픔과 감정을 자신들의 방식으로써 표현하게 되었다.

그 노래가 모체의 하나가 된 블루스이고 또 노예해방 후의 흑인과 크리올(흑인과 백인의 혼혈인:미국에서는 흑인과 프랑스인의 혼혈인)은 예능인으로서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세기 말엽부터는 남부의 흑인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래그타임이라는 율동적인 스타일의 피아노음악이 생겨나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재즈는 아니지만 재즈의 모체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었다. 그 후에 뉴올리언스의 흑인 브라스밴드를 통해 재즈로써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심리학자 융(Jung)은 집단 무의식을 통해 인류역사를 통해 전달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수없이 많은 원형(archetypes)의 존재를 얘기했는데 어쩌면 재즈의 역사에 담겨있는 흑인들의 애환과 아픔이 때문인지 나는 아무리 신나는 재즈를 들어도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움과 슬픔이 느껴진다. 참 재미있는 것이 그런데 그런 재즈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좋아진다는 점이다.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듣는 재즈는 억지로 위로하려하지 않고, 인생을 핑크빛으로 과장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혹시 재즈를 듣고 싶은 누군가를 위해 편안한 곡을 소개하자면, Someone to Watch Over Me(나를 보살펴줄 사람), I am Old Fashioned(나는 구식이에요), My Funny Valentine(나의 재미있는 발렌타인), Everytime we say goodbye(우리가 이별할 때마다) 등이다. 이런 노래를 옛날 가수의 목소리로 듣고 있으면 차별과 박해의 역사마저 예술로 승화시킨 흑인들처럼, 아무리 슬픈 일도 녹여나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골라 놓고 보니 모두 올드 재즈다. 결국 나는 구식인 사람(I am old fashioned)인 걸까? 문득 이런 나와 즐거운 대화가 가능한 그들이 보고 싶어진다. 따뜻하고 삶을 즐길 줄 아는 그들은 재즈처럼 멋있었는데 …….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