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둘러싸고 국민적 관심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해 예산심의와 선거 구제 개편, 경기침체 등의 현안들은 김정은 서울 답방 시기 논란이 묻혀버리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김정은이 언제 서울에 올 것인가라는 의제가 정치 경제 등 우리의 목전에 닥친 진짜 중요한 사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 정치적 분열, 이념을 기준으로 한 국론 분열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김정은의 서울 방문 시기에 전 국민과 정치권이 매몰되서는 안 된다. 그의 방문보다 경제 위기의 원인을 찾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경제전문가와 각 경제 주체들,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이 심도있게 논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그런데도 김정은 방남 일정 ‘점치기’에 빠져 정작 시급한 사안들이 업무처리 순위에서 밀려나게 된 데엔 정부와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김정은 이슈에 몰입해 관련 발언들을 계속 내놓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문 대통령은 4월 남북정상회담과 6월 미북 정상회담 이후엔 거의 모든 해외순방에서 만나는 외국 정상들에게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대북제재 완화를 언급해왔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가 비핵화에 대한 현실적인 진전을 최우선시 하는 동맹국 미국의 입장과 상당한 격차가 있어 한미간 불협화음이 야기 되기도 했다. 우리 정부의 이러한 대북 정책 노선은 지난달 30일 아르헨티나 G20정상회담을 계기로 풀 어사이드(Pull Aside) 형식으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문대통령이 ‘대북제제 유지’ 에 동의할 때까지 계속됐다. 이날 한미 정상회담도 문 대통령이 김정은 방남 초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받아내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남북간에 대화를 하고 정상들이 만나 화해와 평화, 협력을 논의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왜 김정은을 서울에 초청하는지, 만나서 어떤 합의를 이뤄낼 것인지 그 목적을 잊으면 안 된다. 만남의 본질은 빼놓고 지금처럼 언제 올 것인가에 관심이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정치 공학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은의 서울 방문의 본질은 북의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지 연예인 공연이나 이벤트가 아니다. 만남 자체가 목적이거나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행사도 아니다. 정부 부처와 청와대는 마치 내일이라도 김정은이 서울에 올 것 같이 준비 작업에 부산을 떨면서도 “아직 정해진 게 없고, 언제 올지는 우리도 모른다”고 연막을 피운다.


문 대통령의 발언과 청와대의 움직임 등을 종합해 보면 정권의 핵심은 김 위원장 방남 날짜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의 방남 시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최대한 고조시키고, 하루 전날이나 당일 발표해 이른바 ‘탁현민식 연출 효과’를 극대화 하려는 의도마저 감지된다. 결국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에 몰입하는 양상이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목표가 비핵화 원칙을 표명과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게 만드는 것임을 재인식하고, 이제라도 이러한 본질적 목적 달성을 위한 전략을 마련하는데 전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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