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새벽에 짐을 꾸렸다. 가방을 메고 공항으로 달려갔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오르는가 싶더니 곧바로 제주섬에 도착했다. 기내는 만석이었다. 모두들 섬에 대한 로망을 품고 떠나는 여행객이었다. 내게 여행은 사치인가. 일하러, 돈 벌러 제주섬을 밟았다. 아침 일찍 비행기로 와서 회의하고 저녁 비행기로 집에 가야 한다.

회의 장소는 제주섬에 있는 성안교회 내 미술관이다. 교회에 미술관이 있다는 소식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갤러리 수준일 것이라며 가볍게 여겼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크고 말끔하다. 내륙에 있는 웬만한 사립미술관보다 훌륭하다. 마침 이곳에서 아티스트 김해곤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 제목은 <항해자(A Navigator)>다. 제주섬에 어울리는 테마다. 난민, 전쟁, 욕망, 사랑, 구원 등 시대의 아픔을 제주도의 풍경과 함께 담고 있다. 회화와 사진 등의 다양한 기법으로 융합된 모습이 흥미롭다. 거대한 바다에서 알 수 없는 미지를 항해하는 인간의 슬픔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교회 내 미술관에서 회의를 하는 내내 궁금했다.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교회에 예쁜 미술관을 만들었을까. 때마침 일요일이었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둘러보며 작품삼매경에 빠졌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취재의 발길이 잇따랐다. 궁금증을 푸는데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성안교회는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제주지역 최초의 교회다. 그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교회를 새롭게 신축하면서 목사와 신도들이 지역민을 위한 문화공간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역사가 있는 교회에 문화가 있고 예술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데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성안미술관의 관장은 담임목사가 맡고 있다. 한국박물관협회에 등록돼 있다. 정기적으로 초대전을 한다. 예배를 본 뒤 미술관 투어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자연스레 종교적 시선이 문화예술과 조화를 이룬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생각해보니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은 교회가 있다. 신도가 수만 명이나 되는 곳도 있다. 사회적으로 교회세습 등의 적절치 않은 민낯으로 가슴이 아프다. 교회가 말씀과 성령과 회개로 공동체를 일구어야 하고 아름다운 실천으로 알곡진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치적이고 자본과 세습에 연연해한다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도시에 작은 공연장이 부족하다. 문화공간과 문화적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걱정이다. 교회는 선교나 가난한 자를 보듬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문화를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일구고 아픔을 치유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유럽의 교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역의 랜드마크다. 그 속에는 단순히 종교적 시선 외에도 역사와 문화와 예술과 시민통합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미켈란젤로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는 종교적 시선에서 그림을 그리고 조각품을 만들며 음악의 세계를 펼쳤다.

교회에 박물관 미술관이 있고 공연장이 있으며 다채로운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예술장르의 인재를 기르고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신앙이란 문화적으로 성숙된 삶으로의 길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종교는 예술처럼 성찰과 아름다운 향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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