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하얗게 눈이 내렸다. 바지런한 사람이 오솔길에 발자국을 내었다. 동화속의 소녀마냥 발자국을 따라 걸어 본다.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곱게도 누워있는 천사들을 흔들어 깨운다. 파르르 눈 꽃잎들이 내려앉는다. 낮은 곳에서 더욱 반짝인다.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은 모든 것을 쏟아내 차라리 청명하다. 혼자 걷기에 아까운 오늘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옛 동료의 얼굴이 떠오른다. 계면쩍게 웃기만 하는 그가 처음에는 불편 했었다. 근거 없는 긍정적인 태도도 부담스러워 더러 자리를 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더디더라도 본인의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눈에 띄는 일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일에 앞장섰다. 매장 주위까지 깔끔해져 오가는 사람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절대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얼마지 않아 직원들과 이해와 배려로 단단해져갔다.

한창 먹을 나이도 아닌데 점심식사를 하고 뒤돌아서면 헛헛해 해서 직원들은 먹을 것만 눈에 보이면 그를 먼저 찾았다. 틈틈이 허기를 때우고 퇴근 전에는 아예 간식을 제대로 챙겼다. 마지막으로 커피를 한잔 마시고서야 길을 나섰다. 두 번째 일터로 출근을 하기위해서 휴대전화에 바짝 신경을 곧추세웠다. 대리운전의 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짧아 걱정이던 그가 연일 결근을 했다. 며칠 만에 얼굴이 안쓰러울 만치 수척해져 나타났다. 제대로 숙면도 취하지 못하여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하루, 하루를 숙제처럼 견디어내는 그에게 위로의 말은 도리어 부담이 되었다. 무심한 듯 대하다 말하고 싶을 때 들어 주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계절이 바뀌고 조금은 안정이 되는 듯 하여 다행이다 싶었는데 결근 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의 성실로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아내가 저 혈당 쇼크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알코올 의존증으로 혼자 둘 수 없는 상황이란다. 하여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낙향을 준비하게 되었단다.

퇴사를 결정하고 후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쯤 되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업무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첫 출근하던 날 보다 오히려 더 열심이다. 쉬엄쉬엄 하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빠르지 못하니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없으며 그것이 본인을 믿어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이라고 했다. 아내 또한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하고 꼭 건강을 회복시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 그에게 국밥 한 그릇을 대접했다. 그토록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보지 못하였기에 온전히 이해 할 수는 없지만 고단한 그의 삶에 미력하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서 이다.

그는 눈 덮인 세상을 닮았다. 순수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의 가슴이다. 설경이 주는 안도감 뒷면에 언 길에서 헤진 신발을 신은 그가 아내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있다. 조금은 느슨해졌던 마음까지 다잡고 있는 가슴의 소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도 마음을 모아 그에게 전한다. ‘힘내세요. 수정氏, 우리가 응원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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