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1장 달빛 고요한 밤에

▲ <삽화=류상영>
"에미 말은 상규하고 진규하고 같은 날 신발을 사 줬는데 왜, 상규 것은 말짱하고 진규 것만 떨어졌냐 이거여."

"그야, 상규는 시간이 있으믄 죙히 앉아서 책이나 읽는 승질이지만, 진규는 산으로 또랑으로 쏘 댕기기를 좋아 항께 그렁 거 아뉴?"

"에미가 자식 승질을 모를까. 에미 말로는 진규 그 놈이 고생 좀 해 봐야, 난중에는 신발 아까운 걸 안다능겨."

"잘났다. 넘들한티 우세를 시킬라고 아주 작정을 했구먼. 새걸 사주기 실으믄 고무신 때우는데 가서 몇 푼만 주믄 되능걸 갖고 드럽게 우세를 떠는구먼. 남들이 보기에 고무신짝 하나 사 줄 형팬도 안 되는 집구석으로 보이게 만들라고 아주 작정을 했나……"

"에미가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그라는기 아닝께 그만 주둥이 닫고 일 절만 햐."

"어이구……이 절을 부르라고 해도 할 말도 읎슈. 내 새끼도 아니고 지 새끼 신발값도 아까워서 돈 주머니를 풀기 싫다고 하는데 더 이상 머라고 하겄슈."

청산댁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누운 채로 팔짱을 끼고 웅크리고 누웠다.

울타리가 없어서 한뎃집이나 마찬가지인 해룡네 집 앞을 지나서 가면 또랑을 가로 막은 방천이 나온다. 방천 오른쪽으로는 벌똥골에서 굽이를 돌아서 학산 양산간 국도로 이어지는 길로 연결이 된다. 반대편은 옛날 당집이 있었다는 당골로 가는 길이다.

방천에 서서 바라보면 여름이면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는 풀밭이 훤하게 펼쳐진다.

풀밭에서는 봄부터 가을 까지 염소 몇 마리나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학교에 갔다가 온 아이들이 꼴망태나 다래끼를 매고 와서 토끼나 돼지에게 먹을 풀을 베기도 한다. 장마철에 흙탕물이 풀밭위에서 넘실거리면 사람들은 족대를 들고 와서 강에서 올라온 메기며 뱀장어에 미꾸라지 피라미 등을 종다리에 넘치도록 잡기 했다.

풀밭을 지나면 붉은색 역귀가 진을 치고 있는 지역이 있다. 역귀밭을 지나면 마침내 아낙네들의 빨래터인 또랑가의 넓은 자갈밭이 나온다.

자갈밭은 여름이면 아이들의 놀이터다. 또랑에서 배가 고프도록 목욕을 한 아이들이 넓적한 돌로 양쪽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면서 귀에 들어간 물을 빼낸다. 그러다 지치면 새파래진 입술로 자갈밭 사이 드문드문 펼쳐지는 모래밭에 두꺼비 집을 집고, 두껍아 두껍아 새집 줄게 헌집 다오 라고 노래를 부르며 논다.

장마 끝에는 아낙네들이 눅눅해진 이불호청이며군복 따위를 또랑에서 빨아서 널기도 하고 봄가을에는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천렵을 하기도 한다.

천렵을 하는 날이면 구장 황인술이 반장인 윤길동을 데리고 집집마다 각출을 다닌다.

봄이면 보리 몇 되, 가을이면 쌀 한두 되씩 걷은 걸로 천렵준비를 해서 아낙네들과 남정네들이 분담해서 하는 일이 있다.

남정네들은 아침 일찍 쇠죽솥을 지게에 지고 또랑으로 나간다. 비교적 판판한 자리를 잡아서 자갈밭에 화덕을 만들어 놓는다. 돼지 뼈와 돼지 사골을 대야에 한두 시간 담아서 피물을 우려낸 것을 가마솥에 넣고 장작을 잔뜩 집어넣어서 샌불을 보글보글 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끓인다. 그 동안 남정네들은 몇몇 사람은 자갈밭에 차일을 치고 멍석을 깐다.

<계속>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