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목요사색
戊戌年의 끝에서정우천 입시학원장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12.26  10:17:35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정우천 입시학원장] 한 해가 저무는 이맘때의 감상이야 늘 아쉽고 심란하지만, 육십갑자의 한 바퀴를 돌아 만난 무술(戊戌)년을 보내는 마음은 유난하다. 같이 학창시절을 보냈고 같은 시대를 헤쳐 왔던 동창들이 저무는 해의 아쉬움과 다가오는 새해의 덕담을 나누는 송년 모임을 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어떤지, 바닥이 고르지 않아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나는 맨땅에서 했던 축구가 어떤 느낌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끼리의 모임은 무언가 특별한 공감대가 있다.

세상은 늘 변하고 예상 밖으로 움직이지만 내게 닥치는 변화가 아니면 결국 남의 일일 수밖에 없고 짐작만 할 뿐 공감은 한계가 있다. 성질 급한 친구 몇은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고, 사업이나 가정사, 혹은 건강 문제로 삶이 망가져 버려 나타나지 않는 친구들 몇은 후일담으로나 씁쓸하게 등장한다. 다행히도 험한 길 헤치고 나타나 얼굴 마주한 친구끼리 위로하고 안도하고, 그렇게 위안을 주고받는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 붐 세대의 중심에서 태어난 58 개띠가 헤쳐 온 삶은, 어쩌면 제본 잘못된 책과도 같다. 어떤 페이지는 아예 빠져있거나 겹쳐있고 다른 일부는 파손됐거나 순서가 바뀐 책처럼, 정돈되지 않은 채 뒤죽박죽돼있는 세상을 살아왔다는 점이 그렇다. 선착순 달리기를 할 때 몇몇을 통과시키고 다시 한 바퀴를 더 뛰게 하면 방향이 바뀌고 가장 뒤처졌던 자가 다음 선착순에 가장 유리하게 된다.

이 땅에서 20세기를 넘고 21세기를 맞은 58 개띠의 삶이 그런 것 같다. 한때는 소중한 가치라고 믿고 그 가치를 지키며 살아왔는데, 삶의 지향점으로 삼았던 그 가치는 이제 버려야 할 유산이 돼버렸고, 그때 경멸하고 뛰어넘어야 했던 가치는 이제 거꾸로 소중히 받아들이며 노년을 맞아야 할 가치가 됐다.

산아제한의 인구정책이 저출산 시대를 맞아 이제 다산이야말로 애국이 되었고, 조직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아름다웠던 시대는 개인의 자율과 개성을 중시하지 않으면 꼰대로 불리게 되었다. 남편과 자식의 성취를 위해 헌신해 왔던 어머니의 삶은 전근대적 가부장 제도의 버려야 할 폐습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끝없이 성장하고 팽창할 것 같았던 경제와 풍요로운 미래는 이제 한계에 왔음이 점점 확실해지고, 이미 세상은 성장에서 수축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었는데 우리는 어제의 생각을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어쩐지 흑백사진의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컬러의 현실 세계 속에 있지만, 그 흑백의 그림을 더 찬란하고 아름답게 기억하는 느낌이다.
 
되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반복할 수 없는 날들이 쌓여 우리의 삶을 만든다. 어쩐지 쓸모가 있을듯해 버리지 못하고 간직했지만, 이제는 그저 짐이 되고 만 삶의 흔적들을 피난민 보따리처럼 짊어지고 삶의 또 다른 고비에 서 있다. 친구들의 희끗희끗한 머리 위로 가로등 불빛이 쏟아지고 건강하게 다시 보자는 뻔한 인사를 나누며 어둠 속으로 이리저리 흩어진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