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학 진천군청 전 회계정보과장

[정종학 진천군청 전 회계정보과장] 불변의 시간을 타고 올 한 해의 막이 내려가고 있다. 자신에 엮인 상황에 따라 지는 해를 붙잡고 싶을지도, 빨리 보내고 싶을지도 모른다. 현재 이 순간은 어제와 내일을 잇는 다리에서 한 해를 갈무리하고 새로움을 준비할 때이다. 우리는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인생의 거친 풍랑 속에서 날마다 숨 가쁘게 파도를 넘고 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지난 세월에 휘둘려온 과거를 뒤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평한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말이나 글에서 가장 슬픈 것은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한다. 모든 큰일은 작은 일을 소홀히 함으로서 일어난다. 옷의 명품과 불량품은 바느질의 끝마무리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작고 사소한 일에서 사물의 존재가치가 엇갈리고 있다. 가을철 황금빛들판을 거닐면 그 주인의 심성을 가늠할 수 있다. 논·밭두렁이 면도한 듯 깔끔하고 곡식이 풍성하게 익어 가면 보는 사람의 마음도 뿌듯해진다. 그 집안의 분위기도 정결하며 생기 넘치는 기운이 감돈다.


쉰 동이로 태어나 부모님과 함께 지내온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뒷마무리를 잘 정리 한 것을 배우며 익었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오신 부모님은 평소에 어떤 일을 하셔도 뒷마무리를 느슨하게 하지 않으셨다. 이런 감정과 행동이 습관이 되신 것 같다. 자신들이 하실 수 있는 일 만큼은 온 정성을 다했다. 아버지는 쇠죽을 끓이거나 군불을 지핀 후에도 아궁이 앞을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쓸고 정리하셨다. 어머니께서는 겨울에 옷을 빨면 헤진 곳을 꿰매고 다림질까지 해서 챙겨주셨다. 아버님은 저 세상으로 가시던 해도 추수와 김장을 비롯해 작은 일까지 모두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떠나셨다. 현재 주어진 자신의 삶을 제대로 감상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신 듯하다. 이런 부모님의 유훈을 지키며 이어가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주관적으로 결정하거나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것도 무수히 많다. 이런 것들은 운명에 따르거나 서로 연대하고 보조해야만 이루어 질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마땅히 해낼 수 있는 일을 방치하면 게으름과 핑계에 불과하다. 성실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마음이므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내가 할 일을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내가 움직이고 변해야 새로운 세상도 만나고 행복한 삶을 만들며 가꿀 수 있다. 마음은 곡식의 씨앗과 같아 생명성이 있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늘이며 현재뿐이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는 우리 것이 아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마치 외상처럼 당겨 쓸 수도 없다. 마지막 그날까지 내면의 성실함을 채워 나가야 비로소 한해를 마무리 짓는 것이다. 어제의 허물을 벗고 오늘의 뒷마무리를 깔끔히 하면 내일의 신망(信望)이 두터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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