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선 화가
마당 한 쪽에서 남편이 피워놓은 모닥불이 타고 있다. 그가 고구마를 꺼내다 불 속에 넣는다. 타오르던 불기둥이 화들짝 놀라 꽃잎 같은 불꽃이 튄다.

의자를 끌어다 모닥불 앞에 앉았다. 모닥불과 나 사이의 거리는 짧은 거리지만 가까이 접근 했을 때는 몸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고 조금만 멀어지면 다시 추워졌다. 모닥불을 따뜻하게 쪼이기 위해 의자를 뒤로, 앞으로 자주 움직이면서 문득 이렇게 사소한 불과 나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유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적절한 거리유지, 어디 나와 불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이던가. 세상 살아가는 이치가 다 그러한 것을. 하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유지는 더욱 더 그러하리라. 모닥불처럼 거리유지를 하지 못해 나를 떠났거나 떠나보낸 사람들, 이 시간 문득 그리워지는 얼굴들이다.

그새 어두워진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지하 창고에 전구를 밝혀 놓고 수납을 위한 앵글을 조립하던 그가 모닥불 앞으로 다가섰다. 후후 불며 껍질을 벗겨 건네주는 군고구마를 받아 들고 바라본 그의 얼굴이 참 평안하다. 나는 저 남자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그도 나도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편안한 친구로 생각하고 지나친 간섭이나 관여를 하지 않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둘이 남아 남겨진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했던 묵은 세월은 사랑도 미움도 따뜻함으로, 미운 정 고운 정, 정으로 발효되고 숙성 시켰다. 몸이 베어져서도 나무는 무수히 많은 쓰임새로 거듭나 내 집에서 모닥불을 피워내고 있듯, 나도 남편도 이제는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아니라도 서로 몸 닿아 은근하게 피어오르는 따뜻한 모닥불 이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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