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기해년 (己亥年), ‘돼지띠’ 해" 가 밝았다. 필자의 고향마을엔 집집마다 작은 우리를 만들어 한 마리씩 키웠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 원래 주인을 잘 따르고 능청스러워 반려 동물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영리한지 주인 발자국 소리까지 용하게 기억한다. 반가움·놀라움·배고픔·위험·졸림·아픔에 따라 “꿀꿀”은 고저강약과 음색이 다르다. 언뜻 보아 지저분한 것 같지만 참으로 깔끔하고 새끼들 배 곯을까봐 길게 누워 네 다리 제쳐 젖을 물린다. 어정쩡한 인성보다 낫다는 자조 섞인 농담, 오히려 가슴 저릿하다. ‘욱’하는 성깔보다 상대를 타협의 소통이 먼저인 돈격(豚格)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본보가 창간 72주년을 맞아 개최한 세밑 ‘최진희 콘서트’에 초대되어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지존으로 굳힌 35주년 자취를 함께 했다. ‘사랑의 미로·너무 쉽게 헤어졌어요·꼬마인형’ 등 공연 내내 혼신을 다하는 열창과 정제된 무대 매너야 말로 호흡멈춤과 청각매료, 박수의 연속이었다. 인생에 대박은 없었다. 내 안의 답을 찾기 까지 숱한 절망과 고뇌를 묵묵하게 견뎌낸 인간 승리였다. ‘요행은 설령 잡았다 해도 언제 어떻게 추락할지 모를 아슬아슬한 곡예’란 이순(耳順)을 넘긴 가수의 라이브(live) 메시지, 2019의 다짐으로 살아난다.


지난 한 해, ‘한반도 평화’ 밑그림으로 달궈졌다. 남북 대학생의 치맥 회담, DMZ에 이산가족 촌 제안 등 풍선효과는 헷갈릴 정도였다. 보편적 복지 속 경제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러 계층에서 커졌다. 기업이 짐을 싸고 즐비하던 상가엔 먼지만 쌓일 뿐 입에 발린 일자리 창출은 말잔치로 끝났다. 제조업 근력이 약화된 징조다. 위로의 말조차 사치일까 두렵다. 존립 위기에 처한 지자체까지 공무원 숫자만 불렸다. 연일 민생 안정을 외쳤으나 되레 얼버무림, 경화직전 더딘 피돌기로 식겁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쓴 소리를 즐기는 통치 회복이 정돈된 법보다 절절함으로 다가선다.

늘어난 나라 빚 무게로 우울한 미래가 조마조마하다. 가계수입은 제자리인데 생활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먹고사는 문제부터 불안 요소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아무리 짚어 봐도 물렁한 먹잇감은 없다. 이정표란 없는 걸까. 아니다. 너무 설레발치지 말고, 너무 편가르지 말고, 너무 할퀴지 말고, ‘쿵’소리에 깜짝깜짝 놀라 기운 빼지 말고, 소리 결 고운 거문고처럼 부축하고 일으키며 채워줄 살가운 365일을 여는 거다. 나목(裸木)의 잔가지 위로 내민 하늘, 새 해 그려야할 여백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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