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몇 년 전, 서울 모 고등학교 교감이 급식 대기 중인 학생들의 급식비 납부 현황을 확인하면서 "급식비를 내지 않았으면 먹지 말라"고 했다가 혼쭐났었다.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일로 먹는 것에 대한 편애를 꼽는다. 지난 연말 유·초·중·고 무상급식 분담금을 놓고 전운이 감돌았다. 단단히 벼른 김병우 교육감은 "무상급비 문제를 공개석상에서 논의하기 위해 만나자는데 행정의 달인이라는 분이 왜 회피하는지 모르겠다"며 분담금이 어떤 근거로 산출됐는지 조목조목 공개하고 판을 깔았다. 그러나 도지사 역시 "교부금에 포함된 인건비와 여비 등 법정경비는 세출예산 편성 시 도교육청이 임의로 편성할 수 없다”는 규칙을 들어 불퇴 의지를 밝혔다.

지난 6월 동시 지방선거 때는 고등학생 공짜 밥 먹일 대안까지 솔깃하던 하모니가 불과 다섯 달 남짓, 뒤집기 대국(對局)으로 서먹했다. 학교급식을 위한 전진인 만큼 쉬운 결단은 아니었다. 마침내 도의회의 발 빠른 대응으로 판이 접혔다. 프로 바둑은 이런 상황을 ‘끈적한 수’에 비유한다. 합의 내용 중 ‘미래인재육성’ 여진으로 ‘곡간 인심은 어떤지’ 급식 분위기에 자꾸 조마조마하다.

아이들 먹는 걸 갖고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맞장 뜨기에 무상급식 정신마저 퇴조하는 건 아닌지 ‘백년 대계’를 다그치면서 예삿일로 보기 어렵다. 어쨌든 씀씀인 커졌고 타협은 어렵다 보니 인공지능 시대 4차 산업을 선도할 디테일의 교육 형세는 아직 산 넘어 산이다. 친환경급식으로 안전성과 성장기 학생들 영양·건강권 등 과제도 늘어난다. 사실, 식사에서 부족할 수 있는 에너지와 영양소를 생각할 때 점심 한 끼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친 김에 간식(間食)까지 낚아내면 좋으련만 교육감·지사 간 손익 계산을 뒤로한 쿠션 소통이 먼저다.

먹을 게 궁핍하던 시절의 무상으로 착각한 우환에서 빨리 벗어나야 급식도 학부모 웃음도 환해지리라. 자율형 사립고 설립에 대해 아직 시비가 엇갈린다. 명문고를 둘러싼 의미 정립과 평준화·차별화 사이에서 자유로울 탈출구조차 고심이 커 보인다. 잘 먹고 잘 놀아 건강하게 자란다면 그 자체만으로 미래인재 육성 아닐까.

충북교육 강점으로 부각된 ‘씨앗·학교·교육지구’의 마중물,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동네 사람의 사랑·관심이 필요하다’며 유기적 동행을 강조해 왔다. “소나기가 내려 장미를 활짝 피운다면 그 비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는 브론테의 말처럼, 궁극적 행복변인도 진정한 관계 속에 영글어간다. 마찬가지로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 업무보다 몇 갑절 힘든 게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신은 일어서려는 사람에게 지팡이를 준다고 했듯, 협상이든 협의든 큰 국면을 보지 못하면 자칫 그르칠 수 있다. 설령 너무 쉽사리 상대 투항을 받아냈다 해도 공짜는 아니다. 도민 관심 속에 일궈낸 도내 전 학생의 무상급식, 이제 예산의 밀당을 떠나 이상형 식단·먹거리 안전까지 주도면밀하게 챙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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