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왜 자꾸 옛 생각이 나는지, 수척해진 중년의 마음에 그리움과 추억과 사랑이 파고든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슬픔도 세월이 지나니 삶의 여백이고 풍경이 된다는 것을 지천명이 돼서야 알게 된다. 그 속에 꿈이 있고 아픔이 있으며 진한 성장통이 있었다. 불멸의 향기다. 가난한 소년에겐 언제나 돈이 문제였다. 학용품 살 돈 없고 먹을 양식이 넉넉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투정부리는 것도 사치였다. 당신께서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밭에서 일하고 부엌에서 살림하고 호롱불 아래서 바느질을 했다. 언제 일어나고 언제 잠을 자는지 알 수 없었다. 크레파스니 물감이니 하는 학습 준비물을 가져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미술 시간이 되어 친구들이 교실 밖으로 그림을 그리러 나가면 나는 혼자 남아 청소를 했다.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공부해야 했고 가방조차 살 돈이 없어 책과 도시락을 보자기에 쌓아 등짝에 매달고 다녔다.

달그락거리는 도시락 소리에 맞춰 골목길과 논길과 물길을 달렸다. 먼지는 푸석이고 비는 세차게 쏟아지고 눈은 내려도 멈출 수 없었다. 운동화도 사치였다. 언제나 고무신, 그것도 검정고무신이었다. 도시락조차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소년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빈 배를 채운 뒤 학교 뒷산으로 갔다.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며 솔잎을 씹어 먹기도 했다. 새새틈틈 다가오는 두려움과 슬픔 앞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 마음껏 희망하는 세상,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반드시 만들겠노라고 다짐했다.

소년은 소도 키우고 돼지도 키웠다. 지게를 지고 소꼴을 베서 지게에 잔뜩 실어 날은 뒤 작두에 잘게 썰었다. 돼지우리 청소는 구역질나는 일이었지만 잘 키워야 교통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담배농사는 한 여름의 고된 노동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담배농사를 해야만 목돈이 생긴다며 일을 키우셨다. 왼손잡이 소년에게 농사는 슬픈 일이었지만 집안일을 거들지 않으면 안됐다.

달콤한 추억이 왜 없었겠는가. 탕마당과 골목길을 오가며 친구들과 밤늦도록 뛰어놀기도 했다. 대보름이면 마을 앞 하천으로 달려가 지불놀이를 했고 패싸움을 했다. 달빛 찬란한 그날 밤의 일은 숨 가팠고 아름다웠으며 황홀했다. 봄날의 가재잡기, 여름날의 천렵, 가을날의 수확서리를 짜릿했고 달콤했다.    

지나간 일은 아득하고 나의 삶은 정처 없지만 그날의 가난과 그날의 풍경과 그날의 생각들이 나를 만들었다. 사유의 시간이었고 글밭이었으며 마른 대지에 씨를 뿌리며 거름을 주는 경작의 순간들이었다. 상처가 깊을수록, 아픔이 많을수록 더욱 단련되었다. 흙과 함께 저 바람과 함께 쏟아지는 햇살과 함께 달려왔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요즘은 종종 중년의 몸을 이끌고 고향땅을 밟는다. 오라는 사람도 없고 마땅히 갈 곳도 없는데 발걸음을 재촉한다. 텅 빈 집을 두리번거린다. 골목길도 어슬렁거리고 신작로를 향해 목을 길게 뺀다. 설날이 다가오니 옛 생각이 더욱 치솟는다. 한수, 의겸, 성룡, 성길, 길수, 영창, 봉수, 영희, 옥선…. 그 때의 그 악동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그리움의 노래를 부른다. 지나간 추억도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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