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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미래를 역사의 뿌리에서 찾다이현용 보은경찰서 경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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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5  14: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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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용 보은경찰서 경무계]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 이는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구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사실, 이 말씀이 다시금 회자되는 이유가 있다. 올해로 임시정부 경찰이 100주년을 맞이하는 참으로 뜻깊은 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우리 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제 경찰인 임시정부 경찰에 뿌리를 내리고, 이어서 광복 이후 독립운동 경찰에서 한국전쟁의 구국경찰로 이어지는 등 자랑스럽고 정의로운 결실을 맺어왔다.

문제는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사회 저변에는 경찰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제 침탈 이후 친일 경찰들의 반민주·반인권 행태가 소멸되지 않고 4·19의 정치경찰로 이어져 반민주적인 경찰이라는 오명을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의 역사를 통해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아가 국민에게 더욱 신뢰받는 경찰로 비상하기 위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로 임하고 있다. 그를 위한 대표적인 시책 중 하나가 임시정부로부터 시작된 한국경찰 정신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이와 관련, 1972년 발간된 경찰의 공식 역사서인 '한국경찰사'를 살펴보면 임시정부 경찰의 근원과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중대한 사실들이 빼곡하게 기재되어 있다. 특히 임시정부 경찰은 1919년 4월 25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장정' 제44조에 경무국의 직제와 사무가 규정되면서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그렇게 임시정부 경찰은 임시정부 요인을 경호하는 등 임시정부를 수호하고 치안을 지키는 한편 일제의 밀정을 차단하는 경비·정보·보안 경찰의 역할을 수행했다. 뿐만 아니라, 국권을 피탈 당한 까닭에 온전한 사법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준 수사 활동을 병행하였다.

이처럼 고귀한 활동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킨 임시정부 경찰은 현재까지 125명, 독립운동가 경찰은 31명으로 각각 확인되었다. 그 대표적인 위인은 아래와 같다. 첫째, 1919년 8월 12일 임시정부 내무총장 안창호 선생이 초대 경무국장으로 임명했던 백범 김구 선생이다. 김구 선생은 초대 경무국장과 의경대장을 맡아 임시정부 경찰의 초석을 다졌다. 둘째, 경무국 경호원이자 의경 대원이었던 나석주 의사이다. 나 의사는 식민수탈의 심장인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지는 등 국가를 위해 몸 바치셨다.셋째, 의경 대원 유상근 의사는 당시 22세의 나이로 일본 관동군 사령관 등에게 폭살을 시도했으나 붙잡혀 13년간 옥고를 치르다 광복 하루 전날 일제에 의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으셨다. 이 밖에도 수많은 임시정부 경찰이 조국 대한민국의 평화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역사는 죽어있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과거이다. 우리의 지속적인 문제인식과 고증 등에 기반 한 경찰역사의 활발한 움직임이 경찰 스스로를 자정하고 더 나아가 민주·인권·민생 경찰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인 것이다. 앞으로도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경찰상을 정립하고 정진한다면 다가올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에 있어 성공적인 궤도 진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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