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수많은 향기 중에 책 향기만큼 나를 설레게 한 것이 없다. 옛 책만 보면 가슴이 뛴다. 그래서 30여 년을 미치도록 헌책만을 뒤졌다. 책이 내게로 왔고, 이를 통해 책의 소중함을 알았으며,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이 만들어졌다.

고서수집가 강전섭 선생은 청주 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40년간 근무해오다 최근에 정년퇴임했다. 젊은 시절, 대학원 논문을 쓰기 위해 헌책방과 도서관을 다니며 책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옛 책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교과서, 문학서적, 잡지, 종교서적 등 옛 책을 모으기 위해 전국의 헌책방을 문턱 닳도록 다녔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고서 수집에 미쳐보니 책이 조금씩 내게로 왔다. 어떤 책이 귀한지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 수집해야 하는지도 터득하게 되었다. 동서양의 책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한지로 만든 우리의 책이 왜 천년 가는지 알 수 있었다. 닥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고 아름다운 문양을 담았기 때문이며 배접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집안에 책이 가득했다. 책 냄새를 맡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불렀다. 20여 년을 월급 한 번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 월급봉투를 들고 헌책방을 다녔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정상적으로 봐줄 리 없다. 이혼 직전까지 왔고 3년 동안 별거를 했다. 두 번 다시 헌책방을 기웃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합방하는 슬픈 사랑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책을 가장 많이 모았다는 지인의 방문을 여는 순간 구역질이 나서 뛰쳐나왔다. 책에서 나는 냄새가 역겨웠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 어찌 살 수 있냐고 했더니 “이 사람아, 당신은 예전에 이보다 더 심했어”라고 말했다. 그만큼 한 번 미치면 냄새고 뭐고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법이다. 이불속에서도 헌책들이 아른거려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모은 고서만 1만여 권이나 된다. 1897년에 펴낸 독립신문 원본에서부터 정비석의 <자유부인>, 유길준의 <서유견문>,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최남선, 이광수, 정지용, 이육사 등 근대문학 선구자들의 작품을 제 다 소장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전후해서 우리나라에는 육전소설책이 있었다. 춘향전·임꺽정·장한몽 등의 소설집 한 권을 사려면 국수 한 그릇 값인 육전 정도 있어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지로 활자본 책을 만들었으며 겉표지는 두꺼운 종이와 화려한 색상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 책을 찢어 딱지치기를 했다. 그래서 딱지본으로도 불렀다.

도서는 하도낙서(河圖洛書)의 준말이다. 주역의 팔괘와 음양오행의 근원을 담고 있음을 웅변한다. 그만큼 귀하고 값지다는 것이다.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와 경험의 산물이다. 그래서 책을 통해 역사를 읽고 현재를 진단하며 새로운 미래를 일구는 것이다. 다산은 명저 <목민심서>를 비롯해 무려 500여 권의 책을 지었다. 유배지에서도 책을 펴내지 않았던가.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간서치로 유명하다. 책 읽는 바보였지만 책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얻었으며 문장가로 실력을 날렸다.

강전섭 선생은 고민에 젖었다. 이 많은 고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서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값지게 활용토록 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책향기와 함께 평생을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그 향기를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당신의 인생 이모작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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