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덕 칼럼니스트

[기고] 장연덕 칼럼니스트

지주집안 아들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제 어머니의 외숙을 불러갔습니다. 북에서 내려온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오자 생긴 일입니다. “죄가 없으니 괜찮아유.” 하시고 조사받으러 가신 어머니의 외숙은 그날 총살당했고, 그 사체는 당시 한국전중에 휴가를 나오셨던 제 외조부님께서 밤을 타 혼자 수습해 오셨습니다. 아들을 잃고 제 어머니의 외조모님께서는 밤새 큰 소리로 아낙들에게 글을 읽어주며 시름을 달래셨고 사체를 수습해오신 외조부님께서는 얼마 후 포병으로 금화지구에서 순직하셨고 장남을 잃은 제 어머니의 조부님께서는 눈물이 바닥에 흥건해지도록 우시는 날이 잦았습니다.

경찰이라 했습니다. 제 조부님께서 경찰이셨습니다, 잡으러 왔다는 사람들을 피해 산으로 도망치셔야 했습니다. 아직 어린 아기인 제 아버지를 집에 남겨두고서. 조선인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제 외증조부를 남양군도에 끌고 갔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오신 외증조부께서는 “지독한 놈들이여.” 라고 하셨습니다. 이념을 앞세운 위정자들이 어떻게 국민들을 자신들의 집권을 위한 동력원으로 써먹고 버리는지를, 그 구태의연하고 뻔뻔한 모습들을 나열해봤습니다. 시절별로 유행가만 다를 뿐 수법은 똑같았습니다.

삼대가 고통안에 머무르는 중입니다. 이 나라의 역사안에서 어느 한 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이익을 취해온 영악한 위정자들의 자손이 아닌 평범한 국민들이라면 이 개돼지 몰이의 희생양이 안 된 집안이 얼마나 될까요. 지난 정권에 국정을 농단한 사람들을 내보내라며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촛불들고 나간 민초들에게 시간이든 금전이든 무에 그리 대단히 많았겠으며 이념의 중요성이 무에 그리 컸을까요, 그저 살아남고 싶어서 국민대접 받고 싶어서 촛불들고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 번 국민들을 편 가르기를 해서 한 편에서는 적폐를 몰아내기 위해 장기집권을 하겠다며 판을 깔고, 한쪽에서는 독재를 하지 말라며, 홍위병이 난리를 치는 걸 막아달라며 배고픈 국민들을 겁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제는 압니다. 이 패싸움의 승자는 국민이 아니라 오직 위정자라는 것을.

그 판, 걷어치우십시오. 그 이념의 판, 패싸움질의 판 이제 그만 걷으시란 말입니다. 오직 국민에게는 안정된 정치, 경제, 안보가 필요합니다. 국민들에게 이념을 이유로 선택하라 강요하지 마십시오. 위정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시간을 잡아먹는 우매한 선택을 더 이상 국민들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으로 가르더니, 영남과 호남으로 가르고, 이제는 적폐와 홍위병으로 나누었습니다. 너무 오래 해 드신 수법입니다. 경제난, 질병, 재난, 범죄에 예산을 어떻게 쓰는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어느 당이니까 찍어달란 뻔한 돌림노래 그만 부르셔요. 재미도 감동도 없고 안 들어도 후렴구가 들립니다.

설령 정당의 주인장이 밥을 잘 짓는다고 치더라도 주인장 밑의 보조들이 죄다 밥을 잘 짓겠습니까. 밥상차리기도 전에 주방에 물이 샌다는 둥 옆집 주인장이 시비를 건다는 둥 하지 마시란 얘깁니다. 국민들은 위정자들의 자리다툼을 위한 동력원으로 제공될 땔감이 아닙니다. 위정자들은 밥을 지으십시오. 국민은 이미 선결제했습니다. 당신들의 연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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