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빈센트 반 고흐는 여러 방면으로 참 유명한 화가이다. 그 중에서도 그는 특히 자신의 자화상을 즐겨 그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말쑥한 정장 차림에 덥수룩한 수염이 있는 모습의 자화상도 있지만 더 유명한 자화상은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른 후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처럼 자화상이란 자신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며 그 특징을 잡아 그린 그림을 뜻한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의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그리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인생을 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참으로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거나 어려움을 겪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에 대한 자화상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을 때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인간은 두 가지 요소가 하나로 결합되어 이루어진 존재이다. 그 중 하나의 요소는 ‘흙’이다. 흙은 인간의 분명한 한계를 나타낸다. 특별히 인간 육체의 한계는 가장 명확하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세계적인 체육대회에서 선수들은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희비가 엇갈린다. 인간 육체의 한계로 인해서 그 차이는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에 결정되는 것이다.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생기’이다. ‘생기’로 번역된 히브리어 ‘니쉬마’는 성경의 다른 곳(욥 27:, 33:4)에서 하나님의 영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즉 흙으로 빚어진 인간 형상의 내면을 채운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었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인간은 ‘흙’으로 표현되는 ‘한계성’과 ‘생기’, 즉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되는 ‘무한한 가능성’이 융합된 결정체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인간의 본질을 대표하는 특징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성경은 단연코 우리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하나님의 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 눈에 보이는 육체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바라보라고 충고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그런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주목하지 않고 늘 보이는 것에만 집중을 하다보니까 자기 자신의 자화상을 그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판단하여 그리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방법으로는 자신에 대한 올바른 자화상을 그릴 수 없다. 늘 한계에 부딪혀 절망하고 좌절하고 슬퍼하는 인생은 결코 우리에게 본래 주어진 인생도 운명도 그 어떤 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한계로 가득한 육체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내면의 ‘생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육체의 한계나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실패로 인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그와 같은 문제와 어려움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언제든 겪을 수 있겠지만, 우리 자신의 본질은 그와 같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잠재적인 힘과 능력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내 자신에 대한 본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노력해 보기 바란다. 그 과정을 통해서 지금껏 알지 못했던 내 자신의 능력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발견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은 지금까지 넘을 수 없다고 느껴온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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