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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민생투어안용주 선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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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4  14: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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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안용주 선문대 교수

선거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평상시에는 갈 것 같지 않은 시장거리를 돌아다니며 어울리지 않는 몸짓으로 오뎅을 먹고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내뱉는다. 언제부터인가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인들은 떼를 지어 전통시장 골목을 누비며 자신이 얼마나 서민적인가를 어필하고자 분장을 하고, 화장을 하고, 기자들에게 미리 동선을 알려주고, 어떤 가게에 가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까지, 때로는 카메라 앵글까지 설정되어진 장면을 마치 드라마 찍듯이 만들어 내고, 언론은 이런 장면을 가감없이 때로는 언론의 호불호에 따라 각색과 편집에 의해 각자의 언어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들이 신고 있는 구두가, 양복이, 팔에 차고 있는 시계가 떡볶이 가게의 수입보다 많을 것 같은 사진을 보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이런 선거철 정치인의 행동이 낯설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다른 나라의 대통령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전혀 담겨있지 않은, 그저 사진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가 대부분의 서민들처럼 비춰지기를 기대하는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이미지 한 컷을 얻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단역배우로 등장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런 행위가 그들의 표몰이에 도움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소위 민생투어라는 말은 유신정권에서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들에게는 농부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사진을 보여주며 삶을 공유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밤에는 서양에게 가져온 소위 양주(洋酒)를 마시며 취기가 오르면 일본의 엔카를 열창했다는 어느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민생(民生)이라는 말은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를 가리키는 말이고, 투어(Tour)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구경함'을 뜻하니 두 단어를 합치면 '일반 국민의 생활상을 여행하며 구경하고 다닌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못먹고 굶주린 모습, 90도로 구부러진 허리 뒤로 몇 장의 종이상자를 이리저리 엮어매고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지친 일상을 여행하면서 구경한다는 뜻으로 '민생투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배울 만큼 배웠다는 그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조선시대에 임금이 대궐 밖으로 행차하는 것을 '행행(行幸)'이라 불렀다. 때로는 화려한 행차일 경우도 있었고, 호위군관 몇몇과 조심스럽게 서민의 삶을 살피기 위해 궐을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정조대왕의 경우 재위24년 동안 66회의 행행을 했고, 행행 중에 3,355건의 상언과 격쟁을 듣고 처리했다고 한다. '상언(上言)'은 '일반 백성들이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글로 호소하는 것'이고, '격쟁(擊錚)'이란 '임금의 행차 중에 징이나 괭과리를 쳐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것'이라 하니 민생(民生)이란 '서민의 삶을 살펴보고 자신의 부덕함을 깨우치기 위한 행위'로 보아야 마땅한데, 여기에 유유자적하게 세상을 유람하고 구경한다고 하는 '투어'라는 외래어를 함께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치를 이미지로 하려고 하는 사람과 실제의 삶이 그러한 사람은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우리에게는 그런 대통령이 있었다. 꾸미지 않은 서민 대통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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