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조 괴산군 행정과 민간협력팀 주무관

 

[기고] 권오조 괴산군 행정과 민간협력팀 주무관

대학생 때 나름 철이 들어(?) 할아버지 농사일을 도우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문득 그동안 무척 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농사일이라는 게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줄곧 이어질 거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곤하고 힘든 마음에 '이렇게 힘든 농사를 어떻게 지금까지 지어 오셨냐'고 할아버지께 여쭸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간단했다. 앞마을 뒷마을 서로서로 도우면서 해왔기 때문에 지금껏 즐겁게 농사일을 이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예로부터 농업이 주를 이뤘던 우리나라에서는 향약, 두레, 품앗이 등 서로를 도우며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을단위 중심의 공동체가 형성됐고, 서로 공유해온 문화가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러나 산업화·근대화로 세상이 급변하면서 점차 성장 우선주의에만 가치를 둠에 따라 국가발전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통적 공동체 개념은 서서히 사라지면서 무관심이 팽배해지고, 점차 계층단절, 인간소외 등 다양한 갈등요소와 사회적 병리현상이 속속 가시화됐다. 특히 이농(離農)과 탈농(脫農) 등으로 인구과소화 지역이 확대되고, 서로 비방·고소 등 사회적 이기주의가 난무하면서 공동체의식과 결속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공동체 회복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괴산군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괴산군은 사회적 갈등과 병리현상을 없애고, 주민 간 화합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괴산군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 근거를 마련한 뒤 지난해부터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주민자치 실현을 위한 것으로, 마을에 필요한 것을 주민이 직접 제안하고 실행해 지역에서 안고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데 큰 목적을 두고 있다. 괴산군은 매년 5000만원을 들여 다문화, 환경, 경제, 교육, 커뮤니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 중인 이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이 사업에는 전문 컨설턴트가 함께 참여한다. 컨설턴트는 단기적·외형적 결과보다는 과정을, 상호 합의를 통한 결정을 강조하면서 성공적인 마을공동체 실현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괴산군은 이 사업을 통해 단절됐던 이웃 간 유대를 다시 잇고, 주민의 자발적 참여 유도로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토록 해 애향심을 바탕으로 한 따뜻한 주민자치 실현을 꿈꾸고 있다.

괴산에는 느티나무가 많다. 수령이 500년도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마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느티나무는 마치 마을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며 세월의 흐름 따라 동고동락하는 존재인 것 같다. 마을공동체가 느티나무고, 느티나무가 곧 마을공동체인 것 같다. 느티나무 꽃말이 바로 운명이라 한다.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운명처럼 마을공동체와 함께 살아가는 싱그러운 느티나무처럼 지역공동체가 구성원 간 의무와 책임감, 정서적 유대와 포용을 바탕으로 서로 보듬고 함께 나아가는 따뜻한 운명공동체로 발전해 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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