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아주 산 속 마을에 서른을 갓 넘긴 남자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나타났었다. 그는 마을 서당선생의 생질 뻘이 되는 사람이었다. 서당 선생은 그를 따뜻이 맞아 주었고 밤마다 서당 아이들에게 언문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러나 낮만 되면 산속으로 피하게 하고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고문을 받았던 탓으로 한쪽 다리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독립운동과 상관이 있다는 것을 알 만한 노인들은 다 알고 있었으나 어린 우리 학동들은 몰랐다.

공자께서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시다 실망만 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고 옛날의 책을 두루 살피면서 세상에서 불려 지던 노래를 다시 손수 손질하여 먼 먼 후대를 위해 마련해 두었다는 이야기를 서당 선생은 해주면서 나라를 잃어버리면 다리를 잃어버리고 고향을 몰래 찾아오게 된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나이 어리던 우리 학동들은 마을에서 징용에 끌려간 아저씨들도 살아서 돌아오면 다리를 하나씩 잃고 오리라고 걱정을 했었다.

아주 외진 산속의 마을이어서 입이 무거웠다. 며칠 간격으로 순사들이 나와서 긴 칼을 차고 아무리 무섭게 행패를 부려도 마을 어느 누구도 서당 선생의 생질이 피신해 와있다는 고자질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밤마다 언문을 배웠다. 외다리 언문선생은 가갸 거겨를 가르치지 않았다. 나무이름, 새 이름, 그리고 풀 이름들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우리글이라며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몇 달이 그렇게 지나자 우리는 서당선생의 한문보다 외다리 언문선생이 가르쳐준 글이 아주 쉽고 쓰기도 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외지에 나가서는 언문으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매일 밤마다 받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깃발을 든 청년들이 우리 마을로 와서 해방이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자 서당 선생은 우리나라 만세를 부르면서 산으로 피신 가 있는 생질을 찾아오라고 우리들을 올려 보냈다. 외다리 언문선생은 산 속 개울가 큰 바위 위에서 우두커니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해방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외다리 언문선생은 펑펑 울면서 드디어 그날이 왔다면서 우리나라 만세를 불렀다. 하는 짓이 서당선생과 언문선생이 너무나 같아 우리도 아무 영문도 모르면서 우리나라 만세를 불렀다.

외다리 언문선생은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초등학교 학생이 되어 야지의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우리는 어느 마을 학생들보다 한글을 빨리 읽고 빨리 쓸 수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마을 아이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면서 언제 그렇게 배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말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았기에 가르쳐 주질 않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이 물어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는 말을 듣고 서당선생은 이제는 말을 해도 괜찮다고 하였다.나라를 찾아 이제는 한글이 우리글이고 일본말은 멀리 갔으며 우리말이 되살아나게 되었다는 말을 서당선생은 해주었다. 그러면서 공자께서 노나라로 돌아오셔서 제자를 가르쳤던 것처럼 외다리 언문선생도 이러한 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너희들에게 언문을 가르친 것이라고 타일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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