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남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공직자 사퇴 마감일인 3월 4일에 맞춰 전격적인 사퇴와 청와대의 사표 수리, 곧바로 출마선언 등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이 전 장관은 그동안 권위와 거리가 먼 소탈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행정구역 통합을 위해 그가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은 최고 권력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 전 장관이 지난 2009년 2월 행안부 장관으로 발탁됐을 때 의외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세종시 부처이전 고시 문제로 가뜩이나 살얼음판을 겪고 있던 지난 2009년 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차례에 걸쳐 "2009년 7~8월이면 부처이전 고시가 이뤄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충청권 기자들의 눈에 들어온 시기도 이때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례적인 발언에 불과했다. 이 전 장관이 전국민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바로 행정구역 통합을 진두지휘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국정 최우선 과제'로 행정구역·선거구제 개편을 꼽았다. 그때부터 이 전 장관의 활약은 눈부셨다.
당초 행정구역 개편에 보다 적극적인 정치세력은 민주당이었다. 특히 청주·청원 통합은 청주 흥덕을 출신의 민주당 노영민 의원이 총대를 메기도 했다.
노 의원은 통합을 위한 각종 행정절차를 대폭 축소한 뒤 주민투표를 통해 통합을 결정할 수 있는 법안을 제출했었다. 이런 사항에서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계기로 이 전 장관이 전면에 부상하면서 민주당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늠 모양새를 취했다.

청주·청원은 반드시 통합돼야 한다. 하지만 통합의 당위성은 인정되지만, 절차상 하자를 그대로 짚고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를 신속하게 이행하기 위해 지나치게 서둘렀다. 그래서 청원군 공무원 상당수를 반대하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경찰의 면사무소 압수수색이라는 '채찍'으로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시켰다. 그때마다 통합 반대단체들은 통합을 찬성하고 있는 청주시 공무원들과 통합 찬성반대와 형평성이 맞는 진상조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복잡한 구도로 청원지역 통합 반대 여론은 확산됐고, 급기야 행안부가 주도한 여론조사에서 찬성·반대가 박빙의 결과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이 전 장관은 그때 주민투표 발의를 요구했어야 한다. 그래서 주민들의 뜻에 따라 통합여부를 결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당시 자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합 반대세력은 똘똘 뭉쳐있었던 반면, 찬성 주민 상당수가 직접 투표장을 찾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에 주민투표 발의를 요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청주·청원 문제는 해를 넘겨서도 이슈가 됐고, 행안부가 공식적으로 정부 입법발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의원입법 발의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의 경남지사 출마 선언이 중앙 정치권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에도 다양한 논란을 빚고 있다.
가뜩이나 통합대상으로 발표된 곳이 유력 정치인의 국회의원 선거구라는 사실 때문에 제외되면서 반감을 불러오는 단초를 제공했던 이 전 장관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통합시 출범이 가능해보이는 통합 창원시를 끼고 있는 경남지사에 출마하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의 행정구역 통합지휘관 사퇴와 통합 인센티브 제공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진 상황에서 향후 청주·청원 통합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 김동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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