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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김정렬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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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5.11  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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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월 초, 40년 만에 많은 폭설이 내렸다는 날은 네가 의정부 훈련소에 입소한 날이었지. 그러구러 계절로선 봄이로구나. 하지만 계절로서의 봄을 잊은 듯만 하구나

하여 옛 사람들이 이르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나보다. 올해는 계절을 잊은 듯 유난히 많은 눈이 지난 3월까지 앗아가고 있구나.

이제 너를 보내고 네 번째 달력을 떼어 내었다. 어쨌거나 원단에 옹골차게 품었던 꿈과 약속들은 얼마나 잘 지켜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두 달 가까이이상기온 현상이 겨울옷과 봄옷을 동거하게 하는 형국이구나. 얼마 전까지 산새들의 지저귐마저 없었다면 아마도 계절을 의심했을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불과 옷가지를 내다 걸 수 있으리만치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시원하고 날씨도청명하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무심천 도로, 흐르는 물을 휘돌아 흐르는 꽃바람이 옷깃을 스쳐도 좋기만 하구나. 흐드러지던 벚꽃과 개나리도 모습을 감추고, 드문드문 철쭉이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꽃들도 서열이 있는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얼굴을 내미는 것은 아마도 섭리에 순응하는가 보다. 그 모습이 참으로 오묘하고 장쾌해 보인다.

그러나 일조량이 부족한 탓인가. 뒤처진 봄의 도래는 작물생산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고도 한단다. 야채나 과일은 자양분이 모자라고, 과도한 습기로 인해, 농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그래 마음이 무척이나 무거워온단다.

너도 잘 알겠거니와 얼마 전 나라에 슬프고도 큰 아픔이 있었지. 흐드러진 봄꽃들의 경연에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희생된 천안함 참사에 지금도 가슴이 조여드는 것은, 희생자들이 겪었을 마지막 순간의 공포와 절망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지.

희생자들도 너처럼 청소년기 내내 공부에 몰두하여 꿈과 열정을 안고 대학생활을 했을 것이다. 너를 생각할 때마다 늠름한 군인이 되어 서해바다를 지키려다 찬란한 미래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그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그래선가. 요즘은 매일 가슴에 화가 솟구치기도 한단다. 그들에게 그토록 큰 짐을 지우고 왜 우리는 그토록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가 싶구나.

삼각지대나 열대우림의 계곡도 아닌데, 왜 우린 그들을 그토록 뒤늦게 건져 낼 수밖에 없었는지 가슴이 아프기만 하다.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가족이 첫 면회를 가던 날, 엄마는 집을 떠나서 군에서 고생하는 아들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집 떠나오니 고생이 많지?" 하고 물었었지. 그때 너는 모자를 힘껏 눌러 쓰며 군인답게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여기가 저의 집입니다." 하고 외쳤었지. 그만 놀랍고 대견스러웠단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설마'를 반복하며 그저 또 이렇게 준비 없이 살아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뿐이다. 시설물 안전은 경제의 기반이자 국민의 행복이 아니겠니?

어중간한 봄의 자락에서 쳐다보는 라일락이 오늘 따라 유난히도 슬프구나.

아들아! 늘 처음처럼 꿈과 희망을 잃지 말고 군복무에 전념해 주렴. 그게 엄마의 소망이란다.

▲ 김정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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