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음향과 합금기술의 백미 '우리종'...적절한 맥놀이ㆍ긴 여운 갖춘 범종

1 : 1.47 수학적 비례로 설계
주조ㆍ타종 방식까지 최적화

종(鐘)은 범종(梵鐘), 악종(樂鐘), 경종(警鐘) 등으로 불려지나 우리나라에서는 범종으로 일컫는다. 범종은 시각을 알려주는 실용적인 기능도 있지만 의례용, 특히 불가에서는 중생제도(衆生濟度)의 종교적 기능도 지니고 있어 범종은 독자적인 양식과 의의를 가지고 있다.

종의 재질은 한국종은 청동인데 비해 중국종은 철로 다르다. 또한 중국 및 일본 종은 종점에 쌍용으로 된 종뉴를 갖고 있으나, 우리의 종은 단용(單龍)으로 되어 있고 다른 나라에 없는 아름다운 모양(상대, 하대, 당좌, 비천상)을 하고 있어, 소리가 맑고 긴 여운의 맥놀이를 갖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한국종이라는 학명으로까지 불리고 있을 만큼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그 양식의 전형은 신라종에서 완성되었다.

한국종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종신을 특수한 수학적 비례로 설계했다는 점이다.

가장 오래된 상원사종의 하단부 폭과 하단부에서 천판까지의 높이의 비는 1:1.47이다. 이 비율은 석굴암에서 보이는 예술적 조형미의 치수인 황금분할비(1:1.618)와 비슷한 1:1.414에 가깝다.

성덕대왕신종의 경우도 그 비율이 1:1.36으로 역시 이에 가깝다. 또한 당좌의 높이와 종 크기의 비도 역시 황금분할비에 근접하여 있다.

특히 종을 치는 곳인 당좌의 높이와 위치는 종의 스위트 스폿(sweet spot)과 일치하여 타격할 때 종걸이 부분에 최소의 힘이 작용하여 여운이 길어지고 종의 수명이 늘어나는데 적합한 부분에 설계되어 있다.

경주 박물관에서 성덕대왕신종의 소리 세기를 음향측정 한 결과 타종직후 약 5초 후부터 기본 진동수의 음파가 맥놀이(beats) 현상을 일으킴을 밝혀내었다. 서양종, 중국종, 일본종 등도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나 우리의 범종이 가장 맑고 뚜렷하며 적절한 주기의 맥놀이와 긴 여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종 가운데 오직 우리나라 종에만 있는 독창적인 것이 바로 종 상부에 있는 음관(音管)과 종구(鐘口) 바로 밑에 있는 명동(鳴洞)이다. 음관은 음통(音筒), 용통(甬筒)이라고도 하는데, 종의 음질과 음색을 좋게 하는 음향학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음관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외형에서 보이는 직선이 아니라 입구가 좁고, 출구가 깔대기형 기둥의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몸통 전체에서 전해오는 떨림(진동)파와 음관에서 나오는 소리파가 서로 작용하여 소리의 울림을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명동이란 움통 즉, 울림통을 의미하는데 이 명동이 공명진동(共鳴振動)을 일으켜, 종을 때렸을 때 긴 여운이 남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명동의 진동수가 맥놀이를 일으키는 주진동수와 같을 경우(성덕대왕신종은 64hz와 168hz)가 되면 종소리와 울림통이 공명을 일으켜 좋은 울림 즉, 긴 여음을 내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종은 위에 음관을, 아래에는 명동을 설치하여 종 자신의 몸통에서 나는 소리 뿐 아니라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에게 전파되어 나가는 방법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우리 선조들은 음향학·진동학 등의 설계와 주조 및 타종 방식을 최적화하여 성덕대 왕신종과 같은 훌륭한 종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러한 종의 제작은 우리 겨레 과학의 독창성과 창의성,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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