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풍서 귀성버스 추락… 10명 사망

 

6일 하오 4시 4분께 괴산군 연풍면 행촌리 이화령고개(해발 5백m 지점)에서 경기여객 소속 경기영5-199호 직행버스가 높이 1백30여m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져 승객 10명이 숨지고 6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지난 72년 8월 소수면 고마리 교통사고 이후 괴산군 내에선 두 번째로 큰 사고를 낸 이 사고는 전기 직행버스(운전자 원복남·35)가 경북 문경군 점촌에서 승객 70명을 태우고 서울로 오다 이 같은 참변을 당한 것인데 사고 원인은 과속으로 인한 운전 부주의로 밝혀졌다.

이 사고로 중경상을 입은 환자들은 충주 시내 소재한 (사고 지점으로부터 32㎞ 지점) 김풍식 신경외과를 비롯, 8개 병원에 분산 가료하고 있는 한편 사고 지역인 연풍지서엔 7명으로 구성된 사고 대책본부(위원장=정화국 괴산군수)를 두고 사망자를 비롯한 부상자들의 사후 대책 및 구조작업 등을 벌이고 있다.

한편 경찰은 사망자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중경상자들의 신원 등을 정확히 파악,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등 진땀을 뺐다.

<8603호·1973년 2월 8일자 3면>

 

50년 전 기사를 보니 끔찍했던 그 당시가 떠오른다. 사고가 일어난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필자는 참사가 벌어졌던 그 현장을 목도했었다.

연풍천주교회 공소에서 살던 때의 이야기. 우리집 마당에선 잣밭산 중턱으로 뚫린 국도 3호선을 따라 달리는 성냥갑만한 버스가 훤히 보였었다. 잣밭산은 옛날부터 잣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일제의 수탈 탓에 민둥산으로 변해버렸다.

어느 날 우당탕탕 쿵쾅, 굉음 소리가 나더니 동네사람들의 안타까운 소리들이 들렸다.

“아이구, 저를 어쩐댜.”

이화령에서 충주 방향으로 가는 내리막 길은 구불구불한데다 급경사가 많아 매우 위험한 길이었다. 게다가 3호선 국도를 산 중턱에 낸 까닭에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곤 했다. 거기서 끔찍한 사고가 난 것이었다.

마을회관에 시신들을 안치해 놓았는데, 그곳엔 난생 처음 맡게 된 시신 썩는 냄새와 병원냄새가 뒤범벅돼 있었다. 두려운 냄새였다.

이화령 고갯길 사고는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발생했다.

연풍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산간 벽지임에도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연풍이 경상도와 한양을 잇은 길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사고가 난 이화령(548m)은 고개가 가파르고 험해 산짐승의 피해가 많으므로 전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함께 넘어갔다 하여 ‘이유릿재’라 불렀다. 그 후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아서 이화령으로 불리게 됐다.

이화령 고갯길이 너무나 위험하다는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이에 따라 민간투자사업으로는 처음으로 3번 국도가 4차로로 확장되면서 이화령 터널이 뚫렸다. 이후 이화령 터널 옆으로 중부 내륙 고속도로의 상하행선 터널이 추가로 관통됐다. 사통팔달의 연풍에 중부내륙철도까지 개설돼 내년 10월 쯤이면 연풍역으로 열차까지 들어오게 된다.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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