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경사나 변이 있을 땐 운다는 나무

 

청천면에서 물 맑고 경치 좋기로 이름이 난 사담 부락을 지나 남쪽으로 5m 폭으로 넓게 닦아진 길을 따라 숨이 막힐 듯한 협곡을 20분쯤 가노라면 길 옆에 묵묵히 서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를 볼 수 있다.

이 지점이 바로 경북 용화와의 접경으로 이 나무 밑에 앉아 쉬노라면 남쪽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진 넓은 용화평야가, 그리고 시야를 가로막는 아름다운 국립공원 속리산 뒷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

문장대를 비롯한 수많은 바위들이 조화를 이루어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수령 9백90년, 높이 15m, 둘레 5.5m, 면적 3백㎡의 거목인 이 나무는 봄·여름·가을철로 속리산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 나무의 특징으로는 고사한 중앙 가지 윗부분이 불쑥 위로 솟아 있어 모진 풍파에 시달린 그 연륜을 말해주고 있으며 관리자 김동만씨의 말에 의하면 나라의 큰 경사나 변이 있을 때는 이 나무가 운다고 하여 예부터 우는 나무로 구전되어 오고 있는데 해방되던 해와 6·25 때도 울었다고 한다.

이 부락 주민들은 도나무로 지정된 것이 나무의 자랑이라고 기뻐하며 나무 주변의 논을 희사하는 등 보호시설을 갖추기에 바쁘다.

<8607호·1973년 2월 13일자 3면>

 

50년 전 충청일보의 기획시리즈 ‘보호수 순례’를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이번에 소개된 기사는 시리즈 18회째 이야기다.

우리 민족에는 오래된 나무 등을 신성시하던 토테미즘(totemism) 신앙이 있었다. 토테미즘은 한 사회나 개인이 동물이나 자연물(토템)과 맺는 숭배관계 또는 친족관계를 포함하는 다양한 관계를 의미한다. 많은 원시 부족들의 공동체나 종교에서 토테미즘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해방되던 해와 6·25 때 울었다는, 이제는 1000년을 넘긴 청천 느티나무 또한 토테미즘이 발로다.

나라의 경사나 변고에 따라 운다는 나무들은 우리나라 도처에 있다.

그 나무들이 국운에 따라 울었다는 이야기는, 그 말을 믿고 말고를 떠나, 신성한 나무를 매개체로 민초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보호수 순례’ 시리즈의 또 다른 기사를 보자.

괴산군 칠성면에 있는 110년 수령(현재 160년)의 새숲나무(참느츰나무)는 높이 10m에 둘레 2m, 면적이 530㎡에 이르는데, 동네를 보호하는 신목(神木)인 까닭에 감히 해하려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19회)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에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750년(현재 800년)에 높이 28m, 둘레 6.9m인데, 이 나무를 베면 온 마을이 망하고 귀 달린 뱀이 나온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실제로 여름철이면 이 나무 근처에 많은 뱀이 나와 가까이 가려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20회)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에 있는 수령 500여년의 소나무는 높이 18m, 넓이 4m인데 이 나무의 솔잎이 떨어지면 춘궁을 당하게 되고, 고엽(枯葉)이 적게 떨어지면 길조현상으로 여겼다고 한다. 비나 눈이 내리면 소나무에서 쇳소리가 났다고 한다.(17회)

모두 우리 선조들의 소박한 신앙이 담긴 이야기다. /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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