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충청기행>⑨ 서산 김기현 가옥(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199호)

[충청일보]충남 서산시 음암면의 한가한 시골길에 접어들자 눈에 띠는 고옥이 드러났다. 정순왕후 생가와 김기현 가옥이다.

한 눈에 봐도 그 고풍스러움이 위엄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정순왕후 생가는 민속자료로 지정되지 않은 반면 김기현 가옥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199호로 등록돼 있다. 정순왕후 생가는 큰집이고 김기현 가옥은 작은 집이라 한다.

왕후의 생가는 여러차례 고친 흔적이 있어 민속자료로는 지정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그 고풍스러움은 잃지 않았다.

우리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김기현 가옥을 찾아보기로 했다. 안채에 들어서자 우물이 눈에 띈다. 상수도가 없던 예전에는 가정이나 마을마다 이같은 우물이 있었다. 집안에 우물이 있는 집은 그래도 부유한 집이었다. 대개 동네 한가운데 공동우물이 있어 그곳에서 물을 길러다 밥을 짓고 빨래를 했다.

김기현 가옥의 우물은 옛 모습 그대로이나 물을 펌프로 퍼올려 사용하고 있었다. 물이 일정한 양이 넘으면 자동적으로 퍼 올리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에 물이 넘칠 정도로 양이 많다는 것이다.

한옥의 특징은 고풍스러움 만큼이나 포근한 마루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집에 들어서자 곳곳에 마루가 있으며 너무나 편안한 느낌이어서 집 주인의 허락도 없어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역시 나무가 주는 포근함과 세월의 때가 묻은 마루에 흠뻑 젖어드는 기분이었다.

부엌에 들어서자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느낌을 받는다. 부엌은 모두 6칸인데 다른 집에 비해 매우 큰 규모다. 일반 집에 비하면 2배 이상 큰 것이다. 아직도 가마솥이 그대로 있고 탁자도 옛 모습 그대로인데 추위를 막기 위해 바닥은 열선을 깔았다.

또 한쪽으로는 현대식 주방과 냉장고 등이 놓여 있어 지금도 안주인이 편안하게 살림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뒤뜰의 장독대도 눈에 띤다. 비교적 많은 장독들이 나란히 줄을 선듯 놓여져 있고 안주인의 손때가 묻어 나는 듯 햇빛에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장독을 열면 잘 익은 된장과 고추장 등이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김기현 가옥이 있는 서산은 서해안 중심 지역이며 과거에나 지금이나 잘사는 고장이다.

김기현 가옥은 음암면 유계리에 위치하고 있다. 경주 김씨의 집성촌이다. 이 집안은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를 배출했고 조선시대 37명의 정승이 나온 명문가이다.

가옥의 특징은 남동향이다. 대문이 담의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금은 공사가 한창이다. 고증을 통해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중이다. 대문이 북쪽으로 향해 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랑채가 나온다. 사랑채는 남향이어서 안채와 평행으로 서있다.

안채는 ㅁ자 형태로 충청도에서 흔치 볼 수 있는 구조다. 아늑한 모양인데다 작은 부지로도 넓은 공간을 쓸 수 있고 양반 고장으로 남녀유별의 유교 영향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

19세기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는 이 집은 목재가 매우 튼튼하고 정교하다. 일반 농가의 경우 원형의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하나 이 집은 사각으로 깍아 품위있게 지은 것도 특색이다.

처마의 함석은 일제시대 많이 사용되었던 것이므로 차양칸은 외래 문물이 들어온 이후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김기현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 건물에서 고성 이씨가 한때 살고 있었다. 그후 경주 김씨가 다시 사들이면서 대대적으로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들어 여러곳을 많이 수리했는데 부엌을 구식으로 사용하라면 살 수 없을 것이고 화장실도 재래식으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이곳도 화장실은 모두 수세식으로 고쳐 사용하고 있다. 안방과 사랑방은 천장이 없다. 김씨가 천장이 너무 낮아 집을 수리할 때 없앴다고 한다. 벽돌굴뚝도 기와굴뚝으로 고쳤다.

김씨는 자신이 이 집에 대해 왜 더 일찍 돌아보지 못했는가 후회했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한옥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으며 현재 고택문화재 소유자 15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감사 일을 맡고 있다.

고향으로 내려 온 김씨는 문학에 뜻을 둬 화백문학 42호에 '정림이의 외가 방문'이라는 수필로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늦깍이 등단을 한 그는 요즘도 각종 문학 잡지에 글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에 열심이다. 와당에도 관심이 많다. 고려시대 와당부터 조선시대의 것까지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 이곳에 와당박물관을 개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현 가옥에 와당박물관이 개관하게 되면 외국의 관광객들이나 젊은 학생들에게 좋은 학습 자료가 될 것으로 보여 기대된다.
/글·사진=조무주대기자

▲ 김기현 가옥의 주인 김기현씨. © 편집부
▲ 김기현 가옥은 19세기 지어진 전통가옥으로 고풍스러움이 자랑이다. © 편집부
▲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199호 김기현 가옥의 장독대에서 한 관광객이 장이 든 독을 열어 보고 있다.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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