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상 앞에 앉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속한 '충북수필' 이라는 문학 단체에서는 올해로 제2회 충북도내 '다문화가정 편지 쓰기 대회' 일환으로 도내 다문화 가정을 상대로 편지 쓰기를 현상 공모 했었다.

그 결과 많은 다문화 가정들이 이에 응모 했다. 드디어 며칠 전 시상식이 있던 날 우리나라에 와서 생활하는 많은 다문화 가정인들의 정성껏 쓴 편지글들이 공개되는 순간이기도 했었다. 이날 어느 베트남 여인의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읽어주는 편지글이 매우 인상 깊었다. 낯설고 물 설은 타국에 시집 와서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돕기 위해 김치 공장에 나가 일하기도 하고틈틈이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방송통신 대학 강의도 들으며 힘든 삶을 극복해 왔다고한다. 한편 외국인 여인을 자신의 어머니로 맞이한 초등학교 육학년 학생이 쓴 편지글 낭독을 듣자 갑자기 코끝이 찡하기도 했었다. 낯선 외국인 여인을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드린 그 아이는 자신의 심경을 초등학생다운 동심으로 솔직히 표현하며 외국인인 자신의 계모를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았었다. 이는 곧 비록 자신의 계모가 외국인이지만 한국인인 친어머니 못지않게 정이 간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날 '다문화 가정 편지 쓰기 대회 입상자' 시상식을 지켜보며 이런 행사는 문단에선최초로 치루는 행사이므로 회원의 한사람으로서 마음이 뿌듯했다. 더구나 대의명분이 뚜렷한 행사라는 점에 문인으로서 자긍심이 생기기도 했었다. 한편 더 나아가 이를 빌미로 우리 '충북 수필' 문학 단체는 물론 이 행사를 후원해 준 충청북도, 및 충북 교육청, 충북 예총, 충북 문인협회가 널리 외국에까지 이 사실이 알려질 것을 생각하니 도민의 한사람으로서 참으로 어깨가 으쓱했었다.

한편 아무리 세상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의 혜택을 누리고 산다고 하여도 사람의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편지글을 감히 능가 하진 못한다는 사실도 그날 새삼 깨달은 일이다. 낯선 이들과 의견, 경험, 관점 등을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에 쓰는 글과 자신의 경험, 사유, 삶의 철학 등을 고뇌하며 표현하는 글쓰기는 질적으로 다름을 다시한번 실감하기도 했었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남 앞에 나타내고 싶어 한다. 이 때 글쓰기만큼 자신의 심적 나상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어디 또 있으랴. 그동안 이뤄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의 혁명은 어찌 보면 적잖은 부작용도 초래하고 있잖은가.

미처 진실을 파악할 겨를 없이 순식간에 확산되는 헛된 정보가 그것이다. 얼마 전 서울 공덕역 여대생 실종 사건 만 하여도 그렇다. 미처 진상을 자세히 파악하지 않고 SNS와 인터넷을 통하여 빠르게 유포 된 정보로 인해 여대생 실종 사건이 생각만큼 큰 사건이 아니었음이 뒤늦게 드러나는 해프닝이 벌어졌잖은가. 아무리 자신을 나타내는 게 소셜 네트워크의 장점이라고 하지만 마음을 다하여 쓰는 글쓰기를 따르진 못한다. 생면부지인 사람과도 신속히 소통하는 장점을 지닌 소셜 네트워크, 하지만 사이버 공간의 정체성을 의식하여 그곳에 글을 쓸 땐 한 자 한 자 신중히 써야 하리라.

이즈막 일어난 일련의 사건만 지켜보더라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사건 진위야 어떻든간에 능력 있는 행정가 한 사람이 사이버 상의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상사가 일어났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며 얼굴을 가리고 자신의 아이디 속에 숨어서 뱉는 말이 많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 앞에 경각심을 갖기도 했었다. 이 생각에 이르자 조금은 불편해도 잠시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문득 일었다. 스마트 폰을 이용하지 않고 한동안 소식 뜸했던 지인들에게 나또한 긴긴 편지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핸드폰 밧데리, 컴퓨터, 텔레비젼의 전기 코드도 과감히 빼 본 하루이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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