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에게 아들이 많으면 임금 밑의 신하들은 누가 세자가 될 것인가를 점치고 붙을 곳을 찾는다. 이러한 꼴을 조선을 개국했던 태조 밑에서 녹을 받아먹었던 신하들이 여실하게 보여준다. 권세에 붙을 곳을 찾는 사람의 입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입질을 하게 마련이다. 권세의 판에서 변절을 일삼는 입질은 칼질을 불러오고야 만다.

조선조의 역사를 보면 태종정사(太宗定社)란 말이 나온다. 그 말은 방원이 방석을 죽이고 정도전을 죽인 난을 좋게 말해 놓은 것이다. 방원과 방석은 배다른 형제로서 임금의 자리 때문에 방원은 방석을 죽였고 제 아버지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을 죽였다. 정도전은 방석을 임금이 되게 하려고 했다. 태조의 병이 깊자 정도전은 태조의 요양문제를 의논한다는 빌미를 세워두고 왕자를 모두 불러들인 다음 모든 왕자를 해하고 방석을 임금의 자리에 앉힐 궁리를 벌였다.

이를 밀고 받은 방원은 병졸을 거느리고 정도전을 정탐했다. 정도전이 자기 패당들과 술을 마시며 놀고 있는 집에 이르러 불화살을 일부러 쏘아 그 집에다 불을 질렀다. 정도전은 칼을 들고 옆집으로 도망을 쳤지만 옆집 주인이 배가 불룩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고함을 질렀다. 정도전의 배통은 남달리 불룩 나왔던 모양이다. 병사들이 들어가 정도전을 잡아 방원 앞으로 데려왔다. 그러자 정도전이 방원에게 “나를 살려주시면 힘을 다하여 보좌하겠습니다.” 이렇게 입질을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방원은 “네가 이미 왕씨를 저버리고 다시 이씨를 저버리고자 하느냐?”고 입질을 한 다음 정도전의 목을 베어 버렸다. 정도전의 목은 왜 날아갔던가? 방석을 세자에 앉히려고 온갖 입질을 했던 탓으로 입을 얹고 있는 목을 베인 셈이다.


어디 방원의 칼질에 목이 떨어진 자가 정도전뿐일 것인가. 방석에 붙어서 한 몫을 보려던 무리들은 하나씩 하나씩 목을 잘려야했다. 변중량이란 작자도 그중의 하나였다. 변중량은 왕자들의 병권을 없애자고 태조에게 상소를 하여 왕자들을 이간시켜 골육상전을 벌이게 했던 입질을 놀렸다. 방원에게 잡히자 변중량은 “내가 요새 와서는 왕자에게 마음을 돌렸소.” 이렇게 종알거렸다. 변중량의 입질은 울타리 넘나드는 묘수를 부리고 있다. 위의 말은 방석을 등지고 방원에게 돌아섰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말투로 들릴 수도 있다. 이러한 입질은 들 불 같아서 풀이 말라 있으면 붙고 젖어 있으면 꺼지는 짓을 하는 것이다. 변중량의 말을 들은 방원은 “저 입도 역시 살코기다.”하면서 목을 베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입질은 항상 칼질을 불러온다. 그러면 그 칼질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삶의 터전을 피로 물들인다. 그리고 세상은 수라장이 되어 죄 없는 백성들만 고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세력의 흐름에 빌붙어 줏대 없는 입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입은 고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입은 중심을 잡은 마음의 창문이 되어야 한다. 방원 앞에서 떠벌린 정도전의 입질이나 변중량의 입질은 언필유중(言必有中)을 어겼다. 그런 탓으로 목숨을 더럽히고 목은 칼질의 밥이 되었다.

언필유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적절한 말 짓이 아니라 딱 들어맞는 말만 하는 것이며 얼버무리는 말짓이 아니라 딱 떨어지게 하는 말이다. 말이 곧 마음이어야 하고 그 마음은 사리에 맞는 진실이어야 한다. 그러한 진실이 곧 중(中)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당은 정당대로 출마자는 출마자대로 많은 입질을 한다. 입질은 나를 이롭게 한다는 말이 아니고 상대를 이롭게 한다는 말이다. 낚시꾼이 고기를 잡기 위해 쓰는 떡밥과 같은 것이다. 이제 정부나 정치인이나 온 국민 모두가 언필유중(言必有中)하여 좋은 세상 만들기에 힘을 보태야 할 때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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