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파워인터뷰
[파워인터뷰]'한국음악상 공로상'
이홍규 충청대 실용음악과 교수
"하고 싶은 음악하니 나는 행운아"
초등 5학년때 밴드부 드럼 연주로 발들여
동아콩쿠르 지방대생 첫 3등 입상 등 기록
유럽서 플루트 공부하다 지휘로 방향 전환
신홍균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1.10  19:57:0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충청대학교 실용음악과 이홍규 교수(54·한국음악협회 충북지회 전문위원장)가 한국음악계의 지난 한 해를 결산하는 '2012 한국음악상'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활발한 연주 활동과 한국음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받게 된 이 교수는 본보가 지난 해 4월 창단한 충청팝스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이 교수를 만나 수상 소감과 음악을 하게 된 계기 등을 들어봤다./편집자주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 교수는 한 것도 없는데 상을 주니 쑥스럽다며 내내 겸손해했다.

"왜 상을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음악협회에서 지난달 초에 이력서를 보내라고 전화가 오기에 '회원 자료가 부족해서 그러나' 하고 보냈더니 공로상 수상자라고 하네요.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말이죠."

'딱히 한 것도 없다'는 이 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밴드부에서 드럼 스틱을 잡으면서 음악을 접하게 됐다. 고등학교 때까지 드럼을 쳤지만 이 기간 동안 드럼 연주는 단순히 취미일 뿐이었다. 고교 1학년 때까지는 집안에서나 본인 모두 의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성적도 약대에는 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전국에 의대가 몇 곳 없던 시절이었고 그의 부모는 아들이 약대에 들어가 약사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활동적인 성격의 이 교수는 한 군데 앉아서 약을 다루는, 약사라는 직업이 싫었다. 그러다 음악에 눈을 돌렸고 고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진로를 확정했다.

"계속 음악을 하다 보니 다른 것보다 음악이 좋아졌습니다.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 길을 걷자고 마음을 먹었죠.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아요. 1976년 5월 14일이에요. 그 때 잡은 악기가 관악기중에서 가장 음역이 높은 플루트였습니다. 집에서는 공부하기 싫어서 저런다며 반대가 무척 심했죠. 남자가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며 '딴따라', '풍각쟁이'라고 부르던 시절이기도 했고요."

이 교수가 고교 3학년 때 청주대학교가 개교 30주년 기념 1회 전국음악경연대회를 열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4년 장학생 혜택을 받게 됐다.

"아버지께서 충북도청에 다니셨는데 공무원 월급으로는 음악 공부 뒷바라지가 힘드셨던 것 같아요. 서울로는 대학을 못 가게 하시더라고요. 저를 서울에 보내면 동생 3명은 고등학교까지 밖에 못 가르친다시면서요. 그래서 음악 특기자로 청주대에 입학했죠."

그는 대학 4년동안 하루 10시간씩 연습에 몰두하는 등 음악에 파묻혀 살았다. 그런 이 교수에게는 '전국 최초'라는 타이틀이 3개나 따라다닌다.

4학년이던 1982년 8회 한국음악협회 음악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데 이어 21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지방대생 최초로 3등에 올랐다. 최초로 졸업과 동시에 서울시립교향악단에 들어갔으며, 병역특례법 시행 후 첫 수혜자(5년 서울시향 근무)로도 이름을 올렸다.

"동아음악콩쿠르가 4년에 한 번 열렸는데 대학생일 때 거기 나가게 됐어요. 행운이었죠. 병역특례도 최초로 혜택을 받는 등 기회가 올 때마다 잘 잡히는 편이었습니다. 거기다 하고 싶은 음악을 지금도 하고 있으니 저는 정말 행운아인 것 같아요. 하루하루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했지만 평소 준비돼 있지 않은 자에게 행운은 없다. 이 교수가 서울시향에서 모셨던 한기세 수석도 그에게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시향 근무가 끝나가던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기념 유럽 순회연주에 함께 했던 이 교수는 현지 각 학교의 음대 교수들을 찾아가고 여러 음대의 문을 노크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시립국악원과 폴란드 쇼팽 국립음악원에서 계속 플루트를 공부했던 이 교수는 러시아 글라주노프 국립음악원에서 지휘로 전공을 바꿨다. 플루트를 불 때에는 플루트 하나만 알면 되지만 지휘는 모든 악기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가니까 지휘를 동경하게 됐어요. 음악을 오래 하다 보니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군요. 귀국한 뒤에는 중앙대, 국민대, 숙명여대, 청주대 겸임교수를 거쳐 지금의 충청대 실용음악과 학과장을 맡게 됐습니다."

충청대 학생들에게 이 교수는 어떤 스승일까. 그는 스스로 제자들이 자기를 싫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합니다. '지금 놀면 평생 놀게 된다', '여기서 놀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것이냐', '언젠가 피눈물을 흘릴 때가 올 것이다' 등등. 그러니 저를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래도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오면 고마웠다고들 말합니다. 자기들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니까 제가 잔소리를 했던 것이 이제 이해가 간다고요. 제자들이 졸업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교수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체력 관리를 위해 1주일에 3∼4일은 10㎞를 뛰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 해외에 갈 때도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운동복이다. 틈나는 대로 음악을 듣는다. 그에게 클래식 음악은 취미와 전공은 물론 삶의 대부분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낯설고 어려운 장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클래식을 특수 계층만 즐기는 음악으로 알고 실제로도 그런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저는 찾아가는 음악회 등을 통해 이런 면을 해소하려 하고 있어요. 그리고 클래식과 친해지려면 듣든 말든 일단 계속 틀어놓고 생활 속에서 접하도록 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들리게' 됩니다."

수십 년 간 음악과 함께 살아온 이 교수지만 여전히 그에게 음악은 하면 할수록 공부해야 할 것이 늘고 궁금한 점이 많아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일견 지겨워할 만도 하지만 그에게 음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저는 즐기면서 삽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음악이 지겨웠던 적은 없어요. 제가 노력한 만큼 결과도 나오고요. 충청팝스오케스트라는 연출을 공부한 저희 과 이문희 교수가 충북에 제대로 된 팝스오케스트라를 만들자며 연습실과 악기 등을 갖추고 있는 학교에서 이를 시작하자고 해 동참하게 됐습니다. 마침 충청일보도 이를 추진하면서 제 때 연이 닿았고요. 항상 모든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저 혼자 한다고 모든 것이 다 되지는 않잖아요."

이 교수 등 한국음악상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은 오는 14일 오후 2시 한국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신홍균기자

▲ 이홍규 충청대 실용음악과 교수 © 편집부

신홍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