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내면에 행복을 느끼고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자기의 마음이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이 자기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 열등감에 고민하거나 타인이 자기보다 못한 것을 알고 안심하는 우월감을 갖거나 하는 것은 자기 내면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 기분의 원인이 자기 마음속에 없는 인간은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지 않는 인간이다. 타인이 어떤가에 따라 자기 마음이 변하는 인간은 결국에 있어 자기 자신의 내면에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다. 상대가 못한 것을 보고 기뻐하는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무력감에 고민하고 있는 인간이다. 상대가 열등한 것을 보지 않으면 자기가 불안한 인간은 자기 자신의 무력(無力)을 증명하고 있다. 자기의 행복의 원인이 자기 외부에 있는 인간은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는 인간이 아니다. 필요 이상의 재산을 자랑하거나 지위를 과시하거나 하는 인간은 마음깊이 생명의 불안을 안고 있다.

그는 무엇인가 확고한 것을 확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기가 위대한 인간이라는 증거를 찾아내고 싶은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충실감을 느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 자기가 굉장한 인간임을 자신에게 분명히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위대함을 재산에 의해 확인하려고 한다. 그는 자기가 우수한 인간이라는 것을 타인의 약점에 의해 믿으려고 한다.

그는 자기를 확신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도 확신 할 수 없어서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러나 실은 그들은 내심으로 필요이상의 재산이라든가 지위라든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결국 그런 것들은 자기의 불안을 안정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증거로 상류계급의 부인들이 모욕을 받았을 때 얼마나 격노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재산이나 지위에 의해 세상 사람의 눈을 가리려는 데에 전념하고 있는 그녀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어리석음을 분명하게 타인에게 간파된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인 것이다. 자기가 어떻든지 해서 자기의 가치를 믿고 싶다고 생각해서 “자기는 이렇게 재산가다.

이렇게 놓은 지위에 있다. 이것은 내가 위대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니냐.”고 열심히 자기 마음에 대해 타이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지 해서 자기가 존경받을만한 인간인 것을 믿으려고 하여 지위나 재산을 추구하고 있는데 타인이 자기를 존경하지 않고 바보로 취급하면 당사자가 격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욕을 받고 격분하면 그 사람은 모욕을 받을만하다. 또한 자기가 만일 타인으로부터 가벼이 여기는 데에 울분 하는 것이라면 아직 자기는 세상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반성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이 외면을 꾸미는 것은 내면에 자신(自信)이 없기 때문이다. 내면에 자신이 없으면 자신이 없는 만큼 외면을 꾸미려 한다. 외면을 꾸밈으로 타인을 기만함과 동시에 자기도 기만하려 한다. 자기 내면에 자연이 솟아나는 자신(自信)이 없을수록 어떻게 하든지 자기의 가치를 느끼려고 외면을 꾸미기에 필사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존재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여성에게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남성으로서의 외면적 권위를 세우려고 노력한다. 차를 마셔도 찻값을 자기가 다 내려고 한다. 남자가 돈을 지불한다는 외면적 권위에 의해 자기의 권위를 세우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이다.

본래부터 자기가 남성으로서 여성에게 대해서 내면의 자신을 가졌다면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간다든가 나중에 들어간다든가 돈을 누가 내든가 하는 형식적인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남성으로서의 외면적인 권위를 손상당하고 화를 내는 남성은 이 기회에 반성하는 것이 좋다. 선생으로서도 학생이 예의바른 언동을 하지 않으면 화를 내는 것은 선생으로서의 내면의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내면에 자신이 있다면 학생이 대등한 대답을 했다고 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선생으로서의 권위가 손상됐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선생에게 대해서 어떤 태도를 학생이 취해야 한다는 것은 학생이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위대하냐 위대하지 않느냐는 타인이 정하는 것이지 자기가 선전하며 타인에게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도록 강제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권위를 느끼지 못하면 그 만큼 외면적 권위를 세우려고 하여 그것이 손상 되었을 때에 격노하는 것이다.

내면에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의 약점을 알려고 하며 타인의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방면에서 자기의 권위를 세우려고 외면적인 권위를 중요시한다.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타인의 약점에 동정하고 외면적인 권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는 선생은 학생이 자기를 친구처럼 대해도 실례라고 화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것으로 노하는 선생은 학생이 자기에게 어느만큼 정중한 예절로 대해주지 않으면 선생으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는 가련한 사람인 것이다. “체”하는 것이나 권위를 세우는 것은 내면의 무력감과 자신이 없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모두 가짜라고 부처님이 금강경 사구계에 말씀하셨나 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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