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가리켜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한 번도 일본이 가까웠던 적이 없다. 가깝기는커녕 요즘처럼 망언이 계속될 때면 지구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물론 양심적인 일본인은 제외). 일본의 망언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05년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이 "전쟁범죄자가 합사됐다는 이유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발언에 이어 얼마 전 일본 유신회 니시무라 신고 의원의 "일본에 한국인 매춘부가 우글우글하다"는 비하 발언 등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철면피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씻지 못 할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망언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망종의 행태다.

그런데 얼마전 천인공노할 일이 일어났다. 일본 극우 록 밴드 '벚꽃난무류(櫻亂舞流)'가 위안부 여성을 매춘부로 비하하는 노래와 동영상을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으로 배달한 것이다. 수백 번을 석고대죄해도 용서할 수 있을까 말까 한 마당에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노래를 제작해 배달한 이 록 밴드를 보다 못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검찰에 고소했지만 정부는 현실적으로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뒷짐만 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수십 년 전 일본군의 손에 끌려가던 그 때나 지금이나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조국 대한민국에 절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얼마 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한 맺힌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줄 통쾌한 사건이 벌어졌다. 주인공은 늘 국민을 위한다는 정부, 늘 잘났다고 떠드는 정치인, 늘 준엄한 법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사법기관도 아니라 인천에서 활동하는 '블랙스완'이라는 무명 록 밴드였다. 이들은 최근 잇따라 터진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위안부 관련 망언과 극우 록 밴드가 저지른 만행에 분기탱천, 일본 극우파를 통렬하게 비난하는 노래를 3개월여의 작업 끝에 완성해 주한 일본대사관과 극우단체 4곳에 보냈다.

비록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이 세련되지는 못 했지만 '블랙스완'의 이번 행동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맞먹을 정도로 의미 있는 일이라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블랙스완'의 의로운 행동은 우리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다른 사안에는 미주알고주알 잔소리를 늘어놓던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 문제를 우려해서인지 꿀 먹은 벙어리고, 언론은 연예인 스캔들에만 열심일 뿐 이들의 의거에 코딱지만한 지면도 할애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긴 말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의 모습이 일본군의 손에 끌려가는 꽃다운 처녀들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수십 년 전보다 더 비겁하지는 않은지, 만에 하나 이런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 된다면 목숨을 걸고 막을 수 있을 지 말이다.



/김준기 충남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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