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것 같지만 감자를 굵게 수확하려면 감자꽃을 따 주어야 하구요, 마늘을 굵게 수확하려면 마늘쫑을 뽑아 주어야 합니다. 고추는 아래 쪽 잎 겨드랑이에서 나오는 가지를 질러야 하고 토마토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사과나 배나 자두는 너무 많이 달린 열매를 솎아야 나무에 무리가 없고 수확량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모두가 필요한 신체의 일부인데 때론 자르거나 솎아내고 정리해야 제대로 된 결실을 얻을 있는 것이 농사의 기본인가 봅니다. 농작물에 사람이 간섭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상처를 감수하는 손길이 없으면 농사는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때론 지르고, 때론 꺾어내고, 때론 따내는 과정은 제대로 농사의 일부인가 봅니다. 자기 인생도 농사를 짓는 것이고, 가족도 농사를 짓는 것이고, 국가도 농사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고 하는가봅니다. 그간 농업이 요동쳤습니다. 199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가 협상 타결되면 우리의 농업은 모두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 후로 10여 년이 지나며 많이 위축된 면도 있지만, 한 단계 발전된 면도 있습니다. 농지는 공업단지로 바뀌고, 농업인은 도시로 떠났는가 하면, 농업인이 떠난 자리는 남은 자들이 규모화·전업화한 농업으로 바꾸었습니다. 전쟁 세대들이 농촌에서 우루과이 라운드의 시련을 딛고 WTO 시대에 농업을 부흥시켰다면 전후 세대들은 도시에서 부를 일구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농촌에서 도시로 간 빈자리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600명에 달하던 초등학교에는 10여 명의 아이들이 전부이고, 중학교는 폐교의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자연의 품에서 농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도시의 아이들을 보며 미래의 우리 농업은 누가 지킬지, 어떻게 변할지 무척 걱정입니다. 이제는 WTO보다 더 큰 자유무역협정(FTA) 시대를 맞아 우리의 농업은 또 한 번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농촌에 젊고 유능한 농업인이 더 많이 필요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여 더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다행히 도시 산업화의 역군들이 은퇴하여 농촌으로 돌아오고, 젊은 산업 역군이 농촌에서 미래의 희망을 걸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은 그 파고가 낮지만 앞으로 위기가 위기일지, 도약의 기회가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그간 우리는 농업에 필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솎아 내었습니다. 지금의 농업이 큰 위기를 맞아 기회를 살리는데 힘겨워 보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도시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농자는 천하지대본! 예전부터 전해오던 진리가 하루 만에 바뀔 수 있겠습니까? 많은 비용, 적은 인력으로 지금의 농업·농촌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때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내 가족, 우리 사회와 국가의 근본이 농업이고 농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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