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밝은 햇살을 차마 바로 볼 수가 없다.

세월호의 침몰, 그 속울음 속에서도 유유히 봄꽃은 흐드러지고, 여린 이파리들은 파닥파닥 싱그러운 녹 빛을 더하고 있다. 무정하고 아름다운 봄에 눈이 시리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함께 머무는 주간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뇌어보았을 엄마, 아빠 그리고 내 아들, 딸아.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 어버이요 자식인가보다.

4월의 참상은 우리 모두를 어버이이고, 자식이게 했다.

희생자들을 내 가족인양 받아들여 절절히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노란 리본으로 매달려 5월을 맞고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심성은 무엇일까에 마음이 머문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백원정'을 찾아 나섰다. 백원정(百源亭)은 모암 김덕숭 선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로 '효는 백행(百行)의 근원(根源)' 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의 나이 59세 때의 일이다, 병환중인 노모가 잉어가 먹고 싶다는 말을 하자 엄동설한에 백곡저수지의 여계소로 발걸음을 했다.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에서 어찌 잉어를 잡아 올릴 수 있을까. 꿇어앉아 치성을 드린 효심은 두 무릎자리의 얼음을 녹였다.

녹여낸 얼음 구멍을 더 크게 해 끝내 잉어를 구해 고아드리니, 그 정성으로 어머니의 병환이 낫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백원정은 '백곡지'란 안내석이 위치한 초입, 물문 근처 여계소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에 세웠었다. 현재는 저수지 둑 높이기 1차 사업으로 인해 제방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옮겨져 있다.

애써 찾아보려고 하지 않으면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현실 세태를 반영하듯 뒷전으로 밀려 있는 모습이다.

겨우 승용차 드나들 정도의 조붓한 길로 아슬아슬 차를 몰아 도착해 보니 멀리 숲 사이로 얼핏 보던 것 보다 더 초라하다.

당당한 글씨체 위에 너덜너덜 벗겨진 칠은 효의 의미가 퇴색돼가고 있음을 대신 말해준다. 정각의 마룻장은 몰지각한 상춘객의 그을린 양심으로 거뭇거뭇했다.

'효는 백행의 근원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불변의 진리지만, 그 의미를 찾는 사람의 발길은 뜸하다.

지금 이 시대에 효를 운운 한다는 것 자체가 구태의연한 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인간이 절대 절명의 위기 앞에서 찾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 어머니, 아버지. 바로 부모님이지 않는가.

세월호가 기울어지는 그 순간부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엄마, 아버지를 불렀을까. 비단 아이들만 부모를 찾았겠는가. 백발이 성성한 부모님인들 그 어버이를 찾지 않았겠는가.

해마다 떠들썩하게 치루던 어린이날 큰 잔치도, 읍·면별로 돌아가며 벌이던 경로잔치도 올해는 모두 접었다.

누구하나 불만 없이 가슴속에 노란 리본을 매달고 경건하게 일상을 보내는 것을 본다. 마음이 하나 된 까닭이다.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을 낳는지, 가장 사람다운 사람의 심성, 허욕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깊이 성찰하는 5월이 됐으면 한다.

백원정의 전설, 여계소 얼음짱에 꿇어앉았던 모암선생이 반짝이는 물결에 일렁일렁 가정의 달 '효의 의미'를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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