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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자세와 '윤순'의 '라월경'
이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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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6.19  19: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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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중용’에 '지성여신(至誠如神)'이라 는 말이 있다.‘주역’에 '궁즉통(窮則通)'이란 말이 있다. 2006년 9월9일 이를 실감했다. 10여년간 찾던 '라월경(蘿月逕)'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에 있다.

조선후기 3대 서예가라 추앙받는 윤순(尹淳:1680~1741)의 필적이다. 이는 학계에 보고된 충북 유일의 윤순의 암각 글씨이다. 그런데 이곳에 어떻게 당대 명필 윤순의 글씨가 새겨지게 된 것일까?

사담은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1677~1724)으로 하여 유명했던 곳이다. 이곳에 그의 별장이 있었다. 당대 유명한 시인묵객들이 속리산 유람길에 들리곤 했던 곳이다. 지금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 36-7번지 조항기님댁 집터 자리이다.

1716년 이하곤은 여기에 '식영정(息影亭)'을 지었다. 이하곤은 그의 문집‘두타초(頭陀草)’에 '라월경'을 새겨 놓았다고 기록해 놓았다. 또한 '비래봉(飛來峯)'도 새겨 놓았다고 기록해 놓았다. 비래봉은 현재 찾아볼 수 없다.

도로 확장 때 훼손된 듯하다. '라월경'은 '송라(松蘿)와 등나무 사이로 보이는 달'이라는 뜻이다. 글씨를 쓴 사람은 윤순이다. 새긴 사람은 스님 '관상인(觀上人)'인데 정확한 법명은 알 수가 없다. 위치는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 산 12번지이다.

'라월경'이라는 글씨는 '행서(行書)'이면서 '해서(楷書)'의 기미가 있다.

'라(蘿)'는 초서에 가까운 '행서(行書)'이다. '월(月)'은 '행서'지만 '해서'의 기운이 있다. '경(逕)'은 '행서'인데 '경(逕)'의 '약자(略字)'처럼 썼다.

행서를 쓰면서 3글자를 변화있게 썼다. 다양한 글씨를 섭렵하여 노련미가 응축돼 있다.

이는 필자가 최초로 확인했으며 최초로 탁본하여 학계에 최초로 소개했다. 학문은 실패없는 명예로운 사업이다.

논문은 학자의 학문적 얼굴이다. 논문의 질이 학자의 학문적 수명을 결정한다. 필자는 발명특허급 논문과 책을 내려고 노력한다. 즉 현재까지 연구되지는 않았으나, 가치있는 자료를 발굴하여 학계에 소개하는 일을 적극 실천해왔다.

이도 그 하나이다. '라월경'주변에 '송풍석(松風石)''사담동천(沙潭洞天)''서하동천(庶霞洞天)'도 있다. '송풍석'은허목(許穆:1595~1682)의 '전서(篆書)'보다 깔끔하다. 중국 상고시대인 하우(夏虞)시대 비의 '전서 풍(篆書 風)'이 풍긴다. '사담동천' 청천면 사담리 산 3-1번지에 있다. '사담동천'은 왕희지의 '집자성교서'의 글씨풍으로 썼다. 3개 글씨에 대한 평은 서예가 신상철선생의 평이다. 박후양(朴厚陽)이 쓴 '서하동천'이란 글씨도 확인했다. 사담리에 사는 김창환님의 제보로 존재를 알게 됐다.

김상배·김태영·조재명·김재학등과 확인차 올라갔다. 산수지리에 밝은 '산수평론가' 김태영선생이 먼저 확인했다.

피서철이 다가온다. 평소보다 많은 관광객이 사담리를 찾아 갈 것이다. 그곳에 가서 바위에 새겨진 이 4개의 글씨도 감상하면 고품격의 문화관광을 즐길 수 있다. 발품을 판 김에 눈높이도 조금만 높이면 저절로 문화수준이 높아진다.

그것이 문화인으로 자세요,문화선진국으로 향진케 하는 원동력이다. "집이 작아도 '보옥(寶玉)'이 있으면 집안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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