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청 직지축구동호회'

 

지난 1996년 10여명 모여 시작
회원 60여명 市 대표동호회 성장
과음 후에도 수술 후에도
그라운드로 나와 '출석체크'
청원지역 팀과 정기전 통해
통합시 조성 민간교류도 앞장

 

추수가 끝난 논바닥 위로 소년 한 무더기가 흙먼지를 일으킨다
된바람에 '훌쩍' 새카만 추리닝 소매로 콧물을 훔치면서도 발걸음은 신이 난다
간밤 이장님댁 테레비로 본 차범근 선수 흉내를 내보려다 벼 밑둥에 걸려 나뒹굴어도 얼굴은 싱글벙글이다
너덜너덜한 축구공 하나 들고 논으로 달려나가면 세상이 내 것이던 시절이었다
소년들은 훌쩍 자라 이제 제법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 됐지만 여전히 축구공만 보면 신이 난다

 

[충청일보 이용민기자]"추수가 끝나기만 기다렸어요. 논바닥이 운동장이 되면 둥글게 뭉친 지푸라기를 차도 즐거웠습니다. 돼지오줌보도 귀하던 시절이죠."
 

청주시청 직지축구동호회 전상식 회장은 옛 이야기를 꺼냈다. 시선을 비스듬히 올리며 추억을 떠올리자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직지축구동호회는 1996년 축구를 좋아하는 10여명의 시청 직원들이 '반공일' 오후에 모여 공을 차기 시작한 것이 회원 60여명의 청주시의 대표 동호회로 성장했다.
 

상하반기에 회원의 단합을 위해 가족이 모두 참여하는 단합대회를 개최하고 주말마다 교류전 등 정례게임을 벌이며 실력을 쌓고 있지만 이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건 상생이다.
 

청주시청 이상원 홍보팀장은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승부욕이 앞서면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경쟁자들이 아니라 동반자들과 공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처음 합류한 이 팀장은 시청 공식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동호회 활동을 개근할 정도로 축구를 사랑하는 이다. 회식자리에서 과음한 다음날에도, 심지어 디스크 수술 후에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팀장은 "재미가 있으니 나올 수 밖에 없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공에 실어 뻥뻥 날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누구에게나 공은 둥글다'라는 말로 직지축구회의 장점을 꼽았다. 20대서부터 정년을 앞둔 이까지 허물없이 가족처럼 어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정식 동호회로 출범할 때 청주시청 공무원답게 청주를 대표하는 '직지'를 공식명칭으로 정했다. 청주시장배 생활체육직장축구, CJB충북도생활체육직장축구 등 대회에도 부지런히 출전하고 있다. 2008년에는 제8회 임페리얼컵 전국대회 중부권 결선에 출전해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2012년 청원청주 통합 무드가 조성되면서부터는 민간교류에 앞장 서기도 했다. 옛 청원군 지역인 내수 조기회, 강내 조기회와 교류전을 정기적으로 가졌다.
 

통합 준비과정에서는 청원군청 축구동호회와 친선전도 자주 마련했다. 청주·청원의 지역의 화합과 상생발전을 위한 취지였다.
 

통합청주시 출범 이후 행사도 많고 시청이 조직 정비로 분주해 최근 활동이 주춤했지만 회원들 모두 엉덩이가 들썩이는 분위기다.
 

총무를 맡고 있는 박근련 공항활성화팀 주무관은 "다음달 13일 옛 청원군청 축구동호회와 교류전을 갖는다"라며 "아직 예전만큼 자주 그라운드에 설 상황은 아니지만 내년 날이 풀릴 때쯤이면 통합 청주시도 안정되고 동호회 활동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그라운드 밖에서 흘리는 땀은 더욱 값지다. 충북육아원과 옥산 해능보육원 등 지역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고 각종 대회에 참여해 받은 상금과 상품은 TV, 생필품 등을 전달하는 나눔 활동에 쓴다.

 

 

 

'논두렁 축구'의 산 증인  전상식 회장

 

상당구 주민복지를 위한 기초자료를 만드는 통합조사팀에는 근현대 한국 발전상의 산 증인이 있다. 바로 직지축구동호회 전상식 회장(사진)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시작한 운동은 육상. 훈련 후 육상부원들에게 나눠주는 미제 밀가루와 우윳가루로 만든 빵이 탐나서였다.
 

"그때는 참 그게 왜 그리 맛있었는지. 몇 년 죽어라 달리다가 함께 운동하던 친구들은 쑥쑥 크는데 나는 키가 자라지 않아 결국 육상을 포기했죠. 하지만 운동 후 허파가 꽉 차게 몰아쉬는 숨,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타는 듯한 목구멍을 적시는 물 한모금, 이런 느낌들이 늘 그리웠습니다. 사회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조기축구회를 접했는데 푹 빠져버렸죠."
 

직지축구회는 축구선수 생활을 해 본 적 없는 순수 아마추어들로 구성됐다.

 

청주시청에는 또다른 축구동호회가 있는데 이른바 '선수'들이 뛰는 곳이다.

 

실력 차이는 나지만 열정은 뒤지지 않는다. 축구에 대한 사랑은 오히려 그 이상이라 자부한다.

 

전 회장이 만장일치로 회장직을 맡은 것도 동호회에 대한 열정과 사랑 덕이다.

 

"뭐, 빠진 적이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침이 오면 해가 뜨듯이 주말이 되면 운동장으로 나가요. 일상이, 즐거운 일상이 된거죠."

 

 

"생활체육 여건 더 좋아졌으면…"

 

청주시청 직지축구동호회 회원들은 운동장 걱정 없이 공을 차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용정축구장을 주로 이용하지만 예약을 하려면 경쟁이 치열하다.
 

박근련 총무는 "간혹 행사라도 열리면 다른 운동장을 잡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불편하더라도 멀리 청주시 환경사업소 시설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스포츠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보은군의 축구 인프라를 부러워한다.
 

보은군에는 2곳의 천연잔디축구장을 비롯해 인조잔디 2면, 실내체육관 등이 갖추져 있으며, 인근 학교 2곳에도 인조잔디로 운동장이 정비돼 있다.
 

또 축구장 2면과 야구장, 그라운드 골프장 등이 들어설 스포츠파크를 2016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이같이 인프라를 쌓은 덕에 보은에서는 매년 WK(여자축구)리그가 진행된다.

 

또 봄이면 꿈나무축구 아카데미 정규리그가, 여름에는 리틀 K리그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가 열리는 등 축구의 요람이 됐다.

 

박 총무는 "이제 곧 인구 100만명을 바라볼 청주시의 위상에 비해 생활체육 인프라는 아쉬운 편"이라며 "흥덕구 휴암동 일대에 조성 중인 축구공원의 완공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6월 완공 예정인 이 공원에는 야간 경기가 가능한 인조잔디구장 2면과 풋살경기장 1면, 게이트볼 2면 등이 들어선다.

 

박 총무는 "축구동호회가 워낙 많아 축구공원이 문을 열어도 수요를 다 충족시킬 순 없겠지만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