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활성화 문화 강좌
황명수 선생 매주 DIY수업
헌 목재도 손만 대면 금세
새 식탁·화장대로 재탄생
입소문 타고 수강생 줄이어

▲ 하늘목공방 작업실.   /나봉덕기자

[충청일보 이용민기자] 청주 가경시장은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2009년 50억원대에 불과하던 총 매출액이 5년만에 400억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을 주민친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청주 가경시장엔 주민과 상인들이 어우러져 문화예술을 배우고 즐기는 공간이 곳곳에 있다. 주민들의 사랑방이고 취미활동 공간이자 공연장이다.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나무를 손질해 생활에 쓰이는 물품을 만드는 공간도 있다. 시장 내 상인회 건물 3층에 자리잡은 하늘목공방. 이곳에서 주민들은 목재를 자르고 다듬는 법을 배우고 평소 갖고 싶었던 나만의 가구를 직접 만든다.
 

몇 년 전부터 우리사회에 불어온 DIY 바람은 이제 사람들의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다. 'Do it yourself(네 스스로 해라)'의 준말인 DIY는 전문 업자나 업체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직접 생활 공간을 보다 쾌적하게 만들고 수리하는 개념을 말한다. 구미에서 처음 시작될 때 주로 집수리에 쓰인 용어였지만 점차 가구 등 생활용품을 직접 만드는 개념으로까지 확장됐다.
 

▲ 흥덕 '문화의 집' 수요문화강좌 회원들의 작업 모습.   /나봉덕기자

직접 만든 나만의 가구는 삶의 일부분이 된다. 나중에 문짝이 덜렁거리고 다리가 삐그덕 대도 걱정이 없다. 잠시 손을 보면 다시 새 가구로 태어난다.
 

"현대사회는 소비를 강요해요. 모든 것이 대량생산되고 스쳐지나가는 소모품이죠. 돈이면 뭐든 해결되는 듯 보여요. 하지만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나만의 가구라는 의미를 찾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 공방을 운영하는 황명수 선생의 말이다. 나직한 음성에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언뜻 목수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 어린이 체험교실.   /나봉덕기자

하늘목공방에는 흥덕 '문화의 집' 수요문화강좌 회원 6~7명과 목공방 동아리 6~7명이 매주 나무 다루는 법을 배우러 온다. 처음 옥상에 있어 하늘공방이라고 했다가 나무 목(木)자를 끼워넣었다.
 

주말에도 강좌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황 선생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강사로 나서야 해 시간을 내기 힘들단다.
 

섬세하면서도 미려한 제작 설계도면에는 그의 지나온 과거가 배어 있다. 청주 출신인 황씨는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제도를 배웠다. 대기업인 포스코에서 6년이나 근무하다 문득 접고 대학에 들어가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후 문화예술 교육사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황 선생은 "상인들이나 시장을 오가는 시민들이 삶 속에서 예술감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공방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주변 상인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입소문이 나선지 일반 시민들이 많이 와요. 작업공간이 한정돼 있어 큰 작업은 할 수 없지만 식탁, 좌탁, 의자, 서랍장, 화분대 등 대부분의 생활소품들을 만들 수 있죠. 어떤 열성회원은 침대, 장롱 빼놓고 다 바꿨다고 합디다."
 

드릴작업 중인 하늘목공방 황명수 선생.    /나봉덕기자

황 선생은 두 아이의 아빠답게 '보물상자 만들기' 교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문화강좌와 동아리 교실이 평일에 열리다보니 회원 대부분이 주부에요. 엄마 따라 온 아이들이 자투리 목재를 갖고 이리저리 모양을 내보며 즐거워하더라고요. 아이들을 위한 공작교실을 열었죠. 미리 재료를 준비해둬 필통이나 보물상자 같은 간단한 것들을 만들게 했는데 아이들 성취감이 대단했습니다."
 

가장 즐거운 순간은 조립작업이 설계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질 때라고 한다.
 

"아귀가 똑 맞아떨어지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죠. 프라모델 조립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거에요. 몇 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지만 생각했던 것과 결과가 다를 때가 많아요.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 어긋남을 맞춰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 나무망치를 살펴보는 황명수 선생.   /나봉덕기자

황 선생을 가장 당혹하게 하는 순간은 회원들로부터 재료비를 받을 때다.
 

"워낙 장사머리가 없다보니 그저 원목값을 받는 건데도 돈을 받으려니 부담스러워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회원들이 길가에 버려진 원목가구를 들고 올 때면 손이 많이 가지만 내심 뿌듯하단다.
 

"리폼은 자원을 재순환시켜 자원의 총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죠. 원목가구를 재활용하면 결국 나무를 하나 심는 것과 같으니까요. 잘 재단된 원목을 사서 쓰는 게 훨씬 작업하기 편하지만 리폼이 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절단, 샌딩, 조립, 마감 등 가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인상 좋던 동네 아저씨는 어느새 매서운 눈초리를 보였다. '장인의 풍모'가 엿보인다는 말에 황 선생은 애써 손사레를 쳤다.
 

"전문가들이 들으면 욕 먹어요. 전 그냥 사람들에게 삶의 작은 재미를 알려주는 문화 소매상입니다."
 
 
 
 

▲ 제품을 완성한 황명수씨의 입가에 미소가 스치고 있다.   /나봉덕기자

나무를 닮은 사람 황명수
 
 "망치는 권력이죠."
 하늘목공방의 작업장에는 유독 나무망치가 많이 눈에 띈다.
 "망치는 못을 박잖아요. 망치가 가는 대로 못이 가고 못이 박힌 대로 나무가 고정되죠. 우리사회도 권력에 따라 규칙이 생기고 규칙에 따라 보통사람들 삶의 방식이 결정되는 거라 생각해요."
 아직 지천명에 이르지 못했지만 황명수(48) 선생의 망치질에는 왠지 철학이 느껴진다.
 "망치도 종류가 많아요. 우격다짐으로 못을 밀어넣는 망치가 있는가 하면 목재를 다치지 않도록 부드럽게 결을 살리는 망치도 있죠. 나무망치는 나사못의 홈을 매끄럽게 메울 때 주로 사용합니다."
 황 선생이 처음 나무망치를 만들 게 된 건 몇 년 전 우연히 한 중국의사를 만나면서부터다.
 이 의사는 황 선생에게 진료할 때 사용하는 나무망치 제작을 의뢰했다.
 "아, 단순히 힘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망치의 또다른 발견이죠."
 당시 15개의 나무망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진료에 쓰인다니 마치 방망이 깎는 노인을 연상할 만큼 굉장히 신경을 쓰며 만들었단다.
 "그립감이 좋으면서도 무게를 일정하게 하는 게 어려웠어요. 환자한테 쓰인다니 1g의 오차도 소홀히 할 수 없잖아요."
 어찌 보면 황 선생은 나무에겐 의사와 같다. 삐걱이는 다리를 튼튼히 다잡고 뒤틀린 서랍을 바로잡는다. 소용이 다한 듯하지만 슥슥 황 선생의 손길을 거치면 새로운 목재구로 태어난다.
 기분좋은 나무냄새 가득한 하늘목공방 작업실에서 따뜻한 사람냄새가 나는 까닭이다.
 
 
 
 
재활용, 새 숨을 불어넣다
 
 아직 더 수십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데... 이마에는 '폐기물' 딱지가 붙어 있네요.
 저는 좌탁입니다. 처음 왔을 땐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죠.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모두 제 주위에 모여 주전부리를 먹으며 두런두런 하루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모처럼 아버지가 통닭을 사오셨을 때 파티의 중심도 저였습니다.
 제 앞에 앉아 이유식을 먹던 막내는 어느새 대학생이 돼 이제 노트북을 쓸 때만 제게로 왔죠.
 가족들이 새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버려졌습니다. 너무 무겁다나요.
 사실 조금 억울합니다. 요즘 나온 MDF라는 친구들은 가볍고 단단하다지만 환경호르몬을 내뿜는 접착제 성분이 들어있대요. 저도 톱밥으로 분해돼 MDF로 다시 태어날까 걱정이네요.
 싱그러운 햇살, 세찬 비바람, 가지에 내려앉은 눈. 이제는 기억이 가물하지만 켜켜이 몸에 새겨진 수백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가고 싶어요.
 문득 아주머니 한 분이 물끄러미 저를 쳐다봅니다. 이내 폐기물 딱지를 떼어내곤 어딘가로 전화를 합니다. 곧 불려나온 동료와 함께 저를 옮깁니다.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한 원목이라 이내 아주머니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힙니다. 3층 계단이 어찌 그리 높은지 아주머니들이 조금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어쩐지 두근두근하네요. 하늘木공방이란 간판이 보입니다. 안에 들어서니 늘씬하게 단장한 목재 친구들이 반겨줍니다. 어떤 친구는 의자였고 어떤 친구는 책상이었다네요. 다들 한 아저씨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감질만 끝내면 톱밥이 되거나 땔감으로 생을 마쳤을 목재 친구는 근사한 서랍장으로 거듭납니다.
 행복합니다. 목재로 재단될 때 조금 아프긴 하겠지만 다시 '쓸모' 있는 어떤 것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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