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원 영동대학 바이오지역혁신센터 산학협력 전담교수ㆍ농학박사

전국의 산이 붉게 물들어 있다. 9시 뉴스는 전국 곳곳의 명산 위 화려한 등산복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아름다운 단풍이 주요 이유겠다. 어느새 등산객들의 옷차림도 가을 산행에 맞춰 제법 두텁게 변했다. 겨울이 임박했으니 그 옷의 두께도 점차 두꺼워질 게다. 단풍을 만드는 산의 나무들도 역시 겨울을 대비한다. 나무가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로 가장 눈에 띄는 게 바로 단풍이다. 단풍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 사실을 알고 등산을 즐기면 한결 재미가 더할 것 같다.
그럼, 나무 세계로 들어가 보자. 단풍이 들기 전 봄과 여름, 녹색의 모습을 한 나뭇잎은 엽록소라는 기관을 통해서 광합성을 하여 자신의 생장과 대사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나무를 구성하는 모든 기관이 그 에너지를 먹는다. 잎과 뿌리가 생장하고 꽃을 만들며 후대를 위해서 종자를 맺는 것도 그 덕분이다.
지금처럼 가을이 깊어지면 기온이 떨어져 나뭇잎의 광합성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여름 내내 일만하던 잎은 겨울이 오면서 물기가 많아 얼기 십상이라 오히려 애물단지가 된다. 그래서 많은 나무가 나뭇잎과 줄기 사이에 떨켜층이라고 하는 차단막을 만들면서 추운 겨울을 준비한다.
줄기 속의 수분이 증발되는 것을 방지하고 동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또한 그 떨켜층은 잎에 있던 병원균이 나무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도 한다.
겨울이 오기 전 잎에서 만든 당(糖)과 같은 양분이 뿌리에 저장되는 것도 안전 때문이다. 고로쇠 약수나 메이폴 시럽이 단 이유다.
서서히 떨켜층이 형성되고 온도가 내려가면 양분은 느린 대사활동과 떨켜층으로 인해 줄기와 뿌리로 이동하지 못하고 잎 내에 남게 된다. 잎 내부는 양분의 축적으로 산도가 증가되어 녹색의 엽록소는 파괴된다. 대신 그동안 감춰져 있던 황색 계통의 카로틴·크산토필,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이 드러나거나 생성되어 단풍이란 옷을 입게 된다.
단풍나무는 안토시아닌이 많고, 낙엽송과 은행나무는 카로틴이나 크산토필 함량이 높다. 산과 지역마다 단풍의 빛깔이 다른 것도 수종의 차이 때문이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등반객들이 단풍 에 취해 있을 무렵이면, 나무의 떨켜층은 완성 단계에 이른다. 잎의 양분은 줄기로 가지 못하고 잎자루 아래에 누적되면서 양분 통로들을 막아 버리게 된다.
결국, 잎에는 물과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마르면서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고 만다. 낙엽이 지기 전 잎이 마르는 것이 그 이유에서다. 사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것은 기온의 차이와 낮의 길이를 감지한 나무의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에 의해 진행된다. 그 정점에 호르몬이 있다. 우리 몸이 미량의 호르몬에 의해 체내 기능이 조절되는 것과 같이 나무도 아주 적은 양의 호르몬에 의해 필요한 대사작용이 이루어진다. 특히, 낙엽은 엡시스산이라는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뱀이나 곰 등이 긴 겨울잠을 청하는 것과 같이 가을 산의 나무들도 몇 개월간의 겨울잠을 준비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겨울 산을 특히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쉿!! 올 겨울 나무들이 겨울잠을 설치지 않게 그들을 배려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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