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장]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예외 없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위치에 있든지 반드시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재벌 총수나 평범한 직장인도 똑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러날 때가 되면 생각과 걱정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인생에서 체험보다 더 값진 것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부딪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은퇴 후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현역 때는 서로 비슷하더라도 나중에는 많이 다르다. 여자는 살림과 육아라는 역할이 있지만, 많은 남자들은 집안의 한 모퉁이와 침대 한쪽을 차지하는 것 외에 할일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남자들이 은퇴하고 나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이유일 것이다.

일전에 친구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은퇴 후에 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최근 고위직으로 퇴직한 친구가 있는데 집밖으로 외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런 가장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말을 하였다 한다. 집에서 온 종일 독서를 하거나 사색하는 것 외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조차 만나지 않으니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여 내실을 다지지 않은 채 외형만 화려하게 보이려 하지는 않았을까.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지 않고 남에게 잘난 사람처럼 보이고 존중받으려는 자존심만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남에게 더 이상 존중받을 희망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며 은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준비가 없는 은퇴는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언론에서 자주 다루는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창출이 정부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중장년층의 관심사는 주로 은퇴 후 미래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도 이제 직장생활 30여년이 지나갔다. 가족들과 미래의 일과 계획을 화제로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는 편이다.

고성장 산업화시대에 가족과 국가를 위하여 오직 일만 해온 세대들이 은퇴 후 정신적 물질적 빈곤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언론과 주위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미래에 대한 부담으로 걱정이 있지만 함께 생각하는 가족이 있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도 한쪽이 먼저 떠나게 되어 있고, 사회적 경제적 활동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혼자 남게 된다. 결국 사람은 혼자 남게 될 수밖에 없다. 혼자됨을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혼자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삶의 자세와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우선 효과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중국 명나라 유학자 왕양명은 말년에 네 가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다고 술회하였다. 그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한다. 은퇴 후 삶이 힘들어지는 것은 빈곤과 질병이 큰 원인이지만,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더욱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일할 때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지만, 집에만 있게 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평소 자신이 하는 일과 취미가 나중에도 연결된다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나이 들어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이나 독서와 운동 등 취미생활도 훈련을 통해 습관화 되지 않으면 쉽지 않다.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계획과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내와 자녀는 고유의 활동 공간이 있는데 반해 가장인 남편은 자기 공간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혼자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집에만 있는 것은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개인 서재라든지 어떠한 것에 관계없이 자기 공간은 정신적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행복을 돈이나 명예나 지위로만 가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인식하고, 인간의 본성을 찾는 일에 시간과 공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디지털세상보다 아날로그세상에서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일에 감사하며, 작은 일에서 행복을 찾고, 스스로 자기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여야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철학과 종교가 있지 않을까. 소중한 가족과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 그리고 국가를 위하여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진지하게 사유하고 준비할 수 있는 여유로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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