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버 메이트·김영사

▲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충청일보 이진경기자]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의 저자 게이버 메이트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다. 나치의 통치를 받던 부다페스트에서 생애의 첫해를 보냈고 가족들 대부분이 나치에 의해 살해되거나 추방당했다.

극한의 고통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유아기를 보낸 저자는 자신이 부모의 보호자가 돼야 했다. 그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고통을 참아내며 부모의 고통을 배려하는 것을 자신의 성격으로 삼았다. 저자가 내과 의사이면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애착 관계', '주의력 결핍 장애', '중독' 등 인간 심리와 관련된 다양한 저술들을 펴낸 데는 자기 감정에 대한 성찰과 치유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자기희생적 대처 방식을 성인이 돼서도 바꾸지 않으면 몸이 이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공격한다고 말한다. 마음의 상처들은 천식에서 류머티즘 관절염, 알츠하이머병, 그리고 암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책에는 천재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 야구 선수 루 게릭, 위대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퍼스트레이디 베티 포드 등을 비롯한 수백 명 환자들의 삶과 경험에 대한 인터뷰와 세부적인 고찰들이 담겨 있으며, 저자는 우리 몸 안에 존재하는 본래의 지혜를 찾아가는,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여행을 제안하고 있다.

감정적 고통이 신체 질환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는 '믿음의 생물학'이다.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이 사랑할 만하고 인정할 만한 것인지, 아니면 과잉 경계 상태를 영원히 유지해야 하는 적대적인 대상인지를 결정한다.

이 세상에 대해 아이가 지각한 내용은 세포의 기억 장치에 저장된다. 이런 영향이 만성 스트레스가 되면 발달 과정 중인 신경계는 '세상은 안전하지 못하며 심지어 적대적인 곳'이라는 전기적, 호르몬적, 화학적 메시지들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지각된 내용은 분자 수준에서 우리의 세포 속에 프로그램화된다. 분자생물학자인 브루스 립턴은 이런 과정을 '믿음의 생물학'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잠재 능력은 이런 믿음의 생물학이 생리적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보장한다. 전통적인 의료를 선택하든, 대안적 치료 방식을 선택하든, 동양적 치료 행위를 선택하든, 심리 치료를 선택하든 간에, 치유의 핵심은 개인의 적극적이고 자유로우며 정보에 근거한 선택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는 외부 상황으로부터 반드시 해방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먼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믿음의 생물학'의 억압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때만 가능하다.

때로는 몸이 보내는 신호가 긍정적인 지혜를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강직성 척추염 환자 노조활동가 로버트는 자신의 병이 화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줬다고 증언한다.

류머티즘 관절염의 고통스러운 염증이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지적한 연구 결과도 있다. 관절의 유연성이 일주일 뒤 스트레스 사건이 감소한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동기의 감정적 경험에서 몸의 병의 원인을 찾는 이 책에서는 어두운 정서적 체험을 했다고 해서 부모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대물림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트라우마의 가족사가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이어지고 있다고 이해한다면 부모에 대하 비난은 무의미한 개념이 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루게릭병 말기 환자인 모리 슈워츠는 '죽어간다'는 말이 '쓸모없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왜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무력한 아기든 무기력한 환자든 죽어가는 어른이든, 그 어떤 인간도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핵심은 '죽어가는 사람들도 쓸모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쓸모가 있을 필요가 있다'는 그럴듯한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천식에서 암까지 많은 질병들이 등장하고 수백 명의 환자들의 임상 케이스가 소개되지만 이 책은 몸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의 고통과 동시에 몸이 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의 고통을 피하면 몸은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심리학 도서들이 각광받는 시대속에서 몸이 보내는 고통의 신호를 대중의 눈높이로 풀어내고 있다. 520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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