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일본에선 어디를 가도 쉽게 절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불교사원 수는 약 7만6000개, 한국의 절들이 대부분 산사인 것과 달리 일본에선 절들이 대부분 도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퇴근길에 또는 산책이나 장보러 오다가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르고 부처님께 기도 올리는 모습은 매우 흔한 광경이다.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도시의 형성과정을 배울 때 보면 도시 발생의 유형 중 성곽을 중심으로 한 성하도시(城下町)와 더불어 문전도시(門前町), 즉 절을 중심으로 건설된 도시의 비율이 제법 높은 편이다.

나가노의 구시가지 서북쪽에 선광사(善光寺)라는 오래된 절이 있다.

602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니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일본에서는 아스카시대(飛鳥時代)에 지어진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다.

이 절의 본존불은 일광삼존여래(一光三尊如來)로서 일본 최고(最古)의 불상이자 선광사의 승려조차 본 적이 없는 절대비불(絶對秘佛)이다.

선광사 연기에 의하면 2500년 전 천축(天竺 지금의 인도)의 비사리국(毘舍離國)에 살던 월개(月蓋)장자가 부처님께 보은하고자 아미타여래상을 새겨 모셨는데 그가 1000년 후에 백제의 26대 성왕으로 환생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나라를 다스리다 하늘의 뜻이 바다를 건너 왜국에 거룩한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있음을 깨닫고 한 존의 여래상을 보내줬는데 그것이 552년, 흠명천황(欽明天皇) 13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50년, 시나노(信濃, 지금의 나가노현) 출신의 혼다 젠코(本田 善光)이라는 사람이 오사카 지역을 지나가는데 강에서 눈부신 빛이 비춰지더니 부처님이 그의 등에 올라타면서 "성왕이 환생한 젠코여, 나를 데려가서 이 나라의 중생들을 구제하라"고 하셨고 그 말씀을 들은 젠코가 고향인 시나노에 세운 절이 젠코의 절, 즉 선광사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대부분의 일본불교가 백제도래설을 부정하게 됐는데도 오직 선광사만은 성왕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

일본속담에 "소에 끌려서라도 선광사는 참배하라"고 한다. 이는 "미련한 짐승인 소도 부처님의 자비가 깊고 높음을 아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것을 몰라서야 되겠느냐"는 뜻으로 중생들에게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불가에선 "옷깃이 스치는 것도 전생의 인연"이라 하는데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 성왕이 보내준 씨가 땅에 떨어져 싹트고 열매를 맺은 그곳, 일본 나가노에서 태어난 내가 천안에서 거주하고, 청주에 직장을 잡으며 그 옛날 백제가 도읍했던 우리의 고장, 충청도를 평생의 삶터로 삼고 사는 것도 성왕이 남겨준 인연이 아닌가 싶다. 554년 성왕은 충북 옥천에서 신라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한다.

그곳을 지나갈 때면 나는 1400년, 까마득히 오랜 인연이지만 나를 한국에 불러주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은인' 성왕께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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