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웅ㆍ소설가

얼마 전 tv뉴스에 엽기적인 내용이 방영된 일이 있다.
장애 복지센터에 있는 원생들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손목이나 발목을 쇠사슬로 채워 놓은 장면이었다.
뉴스가 나가자 검찰에서 수사를 한다고 하고, 사람들이 분노하는 목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쇠사슬에 채여 있는 장애우들의 그 모습은 마치 ‘쇼우’라는 시리즈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연상시켰고, 생체실험 당하는 마루타를 연상시켰다.
그런 짓을 한 원장이 잠깐 인터뷰에 나왔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지원금 일부를 교회 십일조로 낸 사실이 획인되어 묻자, 원생들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십일조를 낸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다.
원장이 하나님을 팔면서까지 착복을 하는 인상을 주었다.
당당한 어조로 말하는 원장의 목소리는 그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자체를 잘 모르는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원생들에 대한 학대가 하루 이틀이 아닌 일상적인 것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 장애우들의 수는 약 1백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청각장애, 시각장애, 지체부자유, 뇌성마비등 다양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국민의 수가 적지 않다.
관할 기관인 보건복지부에서는 나름대로 그들을 위한 정책을 세우고, 복지 지원을 하고 있겠지만, 제대로 관리 감독이되고 있는지, 진정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사건이 터지고 보면 그때서야 관심을 갖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이번에 드러난 원생들의 쇠사슬 사건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우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어느 장애우 복지센터가 떠오른다.
어느 단체와 함께 복지원을 방문해서 함께 식사를 했는데, 옆에서 밥을 먹던 장애우 한 명이 나직한 목소리로 다음에 언제 올 것이냐고 물었다.
선생님들이 자주 와야 고기도 올라오고 반찬이 좋아진다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순간 생각하기를, 평소에는 반찬조차 별로 좋지 않은데다 고기를 잘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프리카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어 도와주고, 북한에 인권이 유린된다고 하면서 떠들기 이전에 먼저 우리나라에 굶주리는 사람은 없는지, 우리나라의 그 어느 일각에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은 없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복지원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인권유린은 그것을 관리하는 기관에서도 일부 책임이 있다.
관리 감독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변명하겠지만, 그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다른 제도적 장치라든지 관심을 가지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려면, 복지정책의 후진성부터 탈피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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