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안용주 선문대 교수] 미토스(mythos)라는 희랍어는 신화 정도로 번역이 되지만 어떤 문화나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신앙체계 또는 '가치관'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가치관 또한 우리에게는 외래어의 일종이다. 가(價)는 값, 가격, 값어치, 명성, 평판이며 형용사로서 값있다, 값지다는 의미를 갖는다. 치(値)는 값, 값어치, 가격이며 동사로서 걸맞다, 가지다, 지니다, ~할 만하다의 뜻이 있다. 관(觀)은 동사로서 보다, 보이게 하다, 보게하다, 나타내다의 뜻이다. 가치관이란 결국 '무엇에 중심을 두고 가치를 판단할 것인가의 기준이 되는 것' 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일본의 비평가이며 사상사(思想史) 전문인 아사다 아키라(?田彰)는 그의 저서 <逃走論 스키조키드의 모험>에서 인간을 스키조인간과 파라노인간으로 분류했다. 스키조인간이란 다양한 분야에 흥미를 갖고 어떤 한 가지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 파라노인간은 무엇인가 하나에 몰두하고 그 이외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으로 구별했다. 가치관은 다양한 것이고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제주도 관광간다', '제주도 구경간다' '제주도 놀러간다'는 목적어가 '관광, 구경, 놀러'로 바뀔 뿐이지만 뉘앙스는 묘하게 결을 달리한다. '관광간다'는 목적이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고결한 행동적 결심인 듯 보이고, '구경간다'는 목적 그 자체가 필요 불가결하기 보다는 조금 가볍고 수수방관적인 느낌을 준다. '놀러간다'는 내게 어떤 느낌을 줄까? 각자가 생각해 볼 일이다. 영어는 sightseeing으로 귀결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국민여가활동조사보고서(2014)에서 '여가활동'범위를 휴식활동, 취미오락활동, 스포츠참여활동, 사회활동, 문화예술관람 및 참여활동, 관광활동 등으로 조사한 결과 62.2%가 휴식활동을 0.7%만이 관광활동을 한다고 답했다. 평일의 평균여가시간은 3.6시간, 휴일 5.8시간, 월평균 여가활동비용은 13만원으로 집계되었다.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보면 휴식활동 62.2%에는 텔레비전시청 33%, 친구만남 20%, 영화보기 18.7%, 산책과 인터넷검색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텔레비전시청은 40대 33.1%, 50대 35.9%, 60대 47.1%, 70세 이상은 54.8%를 차지하고 있어 연령대가 높아짐에 따라 여가활동의 대부분이 집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과 집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한정지어지는 특성이 강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산업화의 역군이길 자처했고, 직장과 일이 가정과 개인의 삶의 질보다 더 우선시되었던 베이비부머들이 50대가 된 지금,  '놀러간다'는 말이 죄스러워서 감히 입 밖에 꺼내보지도 못한 가치관의 소유자들에게 남은 것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 이외에는 주어진 것이 없는 삶이 되어버린 오늘이다. 노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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