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김진웅 수필가] 며칠 전, 친구들과 상당산성에 갔다. 청주랜드에서 옹기박물관 앞을 지나는 등산로로 올랐다. 평일인데도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높푸른 가을하늘, 간간이 반겨주는 들국화와 대화하며 오르다보니, 요즘 비선실세라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울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독서를 하며 라디오를 들으니 어느 초등학교 6학년 평가이야기가 나왔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너무 서글프고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었다. '국가 살림을 위한 돈을 어디에, 어떻게 나누어 쓸지 계획한 것이다'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쓰라는 시험문제였다. 이 어린 학생은 놀랍게도 '최순실'이라 썼다. 정답은 '국가 예산'이니 오답으로 처리되었지만…….

 상당산성에 오르니 성곽 밖에 가까이 있는 나무들을 베고 잘 정비하여 놓아 전에는 보이지 않던 청주시내와 멀리 있는 초정약수터도 손에 잡힐 듯 보여 가슴이 후련하였다. 성(城)을 한 바퀴 돌며 친구들에게 질문하였다. "저 성 밖의 나무를 왜 베었을까?"하니 "경관이 잘 보이라고"한다. 물론 맞는 말이겠지만 "성벽으로 침범하는 적군(敵軍)을 경계하려고"하니 모두 웃는다. 옛날 이곳에서 전투를 하던 모습을 그려보며 웃자고 한 말이지만 지형을 활용하여 성을 쌓고 나라를 지키던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상당산성은 둘레가 4.1km, 높이 2~4m에 달하는 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정상부까지 계곡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 석축 산성이고, 상당이라는 명칭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남문 밖에서 발견된 옛 기와의 명문을 통해 통일신라의 서원경과 관련되었고,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영호남과 서울로 통하는 통로를 방어하는 요충지였다고 한다. 특히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충청도의 군사 책임자인 병마절도사는 청주읍성에 있었으며, 그 배후인 성당산성에는 병마우후를 두어 방어하게 하였다.

 상당산성에는 대략 3,500명의 병력과 승군이 배속되어 산성의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였다고 하니 매우 중시한 성이라 여겨진다.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부터 영조 23년(1747년)까지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진동문(鎭東門), 서문인 미호문(?虎門) 등을 보수하는 것도 직접 보며, 문화재 관리를 하는 것도 매우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고장 청주시 '상당구'란 명칭도 상당산성 영향으로 정했을 것이다.

 민속마을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들으니, 마침 국화축제도 있다한다. 찾아가니 국화차도 무료로 제공하여 무척 고마웠다. 향기로운 국화차도 마시고, 곱게 가꾸어진 국화정원을 걸으니 온갖 시름도 잊고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런 소중한 행사를 기획하고 이른 봄부터 땀 흘려 가꾸신 분들 덕분이다. 몸과 마음이 더욱 건강해지고 충전되는 상당산성 같은 명소(名所)가 우리고장에 있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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