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19세기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은 방대한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해저 2만 리>, <80일간의 세계 일주>, <15소년 표류기>, <달나라 여행>과 같은 기상천외한 모험 소설들을 남겼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은 한 눈에 봐도 기상천외한 모험의 느낌이 든다면 <녹색광선Le rayon vert>(1882)은 다소 잔잔한 일상 속 여행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작품에도 수평선에 해가 지는 마지막 순간의 녹색광선을 둘러싼 과학적 가설과 신비로운 전설의 절묘한 융합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헬레나의 보호자인 멜빌 삼촌들은 막 숙녀가 된 헬레나에게 멋진 짝을 맺어주고자 과학도 어시클로스를 소개해준다. 하지만 헬레나는 녹색광선을 보고 난 후에 결혼을 하겠다고 하며, 하늘이 완벽하게 맑을 때 수면 위로 태양이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 광선은 붉은 광선이 아닌 녹색광선일 것이라는 <모닝 포스트> 지의 짧은 기사를 삼촌들에게 보여준다. 그런데 헬레나가 녹색광선을 관찰하고자 하는 진짜 이유는 녹색광선이 그것을 본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에 속지 않게 해주고, 헛된 기대와 거짓말을 사라지게 하며, 자신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해준다는 하일랜드 지방의 전설 때문이다. 그 전설로 인해 헬레나는 녹색광선을 관찰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 소설 <녹색광선>에서 녹색광선이 나타난 장면

멜빌 삼촌과 헬레나 일행은 녹색광선을 찾으러 나서고 도중에 헬레나는 올리비에라는 청년을 만나 서로 사랑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그들 일행은 오랜 여행 끝에 마침내 어느 바닷가에서 녹색광선을 목격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주 잠시 동안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이 투명한 비취색 녹색광선을 바라보지만, 헬레나와 올리비에는 녹색광선을 보지 못한다. 태양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마지막 빛을 선사하던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향했고,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자신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올리비에는 자기들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녹색광선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헬레나는 녹색광선을 관찰하게 되면 얻게 된다는 전설이 말하는 그 행복 자체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더 잘 본’ 것이라고 대답한다.

▲ 영화 <녹색광선>에서 녹색광선이 나타난 장면

이 작품을 각색한 에릭 로메르의 영화 <녹색광선>에서도 여주인공 델핀은 녹색광선을 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진실한 사랑을 꿈꾸며 녹색광선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델핀은 휴가가 끝날 때까지 사랑을 만나지 못하고 역으로 오다가 거기서 한 남자와 한눈에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원작에서와 달리 수평선으로 태양이 사라지기 직전 녹색광선이 나타나는 순간 두 사람은 함께 그 광선을 바라본다. 만일 이 작품에서 말하는 것처럼 녹색광선이 나 자신과 상대방의 진실한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면, 실제로 녹색광선을 만났을 때, 그 녹색광선 자체를 바라보아야 할까? 아니면 상대방의 마음 그 자체를 바라보아야 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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