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동기들에게 불려나간 아들이 조그만 케익 상자를 들고 들어온다. 군 입대 축하 선물이란다. 저희들끼리 차를 마시면서 한쪽을 허물어 먹었다. 모양을 정리하다 보니 더운 것이 그 위로 떨어진다. 버리기가 아까워 떼어 내 입안에 넣었다. 눈물 젖은 케익이다.

고개를 들면 산과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두메산골에서 자라선지 케익의 존재는 티브와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스무 살 넘어 제과점에서 직접 본 케익은 현실에서 동화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옅은 갈색 크림으로 덮인 스펀지의 부드러움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달콤함은 두 눈을 감은 채 목 넘김을 아끼게 되었다. 친구의 생일 날 네 댓 명이 진열장에서 제일 작은 것으로 마련하여 촛불을 끄고 난 후 겨우 한 입 먹은 것이 첫 만남이었다.

결혼 후 남편이 가끔 사들고 들어오던 치즈케익은 언제나 두 조각이었다. 남편은 직장 생활을 했지만 학생 신분이었기에 최대한 소비를 줄여야 했다. 보드라운 치즈의 풍미가 입 안 가득 느껴질 때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면 보드라움은 배가 된다. 행여 느끼함이 머뭇거리면 따뜻한 커피로 돌려보내면 된다. 혼자 먹기 미안해서 남편에게 권하면 그는 즐겨하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세월이 흘렀다. 남편이 치즈케익을 한판씩 들고 들어온다.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그도 무척이나 좋아 한단다. 온 가족이 함께 먹어도 남아서 냉장고로 들어간다. 가끔 냉동실에 넣었다가 살 얼었을 때 꺼내면 아이스크림이 된다. 새롭지만 예전만큼 당기질 않는다. 풍요가 부족함만 못한 것 같다.

큰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끝나면서 먹고 싶은 것이 많아졌었다. 그 중 하나가 생크림 케익이었다. 크림위에 과일을 얹은 것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순백의 신부 모습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눈으로 음미하고 나서야 비로소 만나는 달콤하면서도 보드라운 맛은 아직까지 먹던 맛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지인들이 생일을 맞이하면 케익을 선물하게 되었다. 그처럼 예쁘고 달콤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한 조각의 케익이 되기 위해 온 몸을 자연에 순응하고 종내는 한줌 가루가 되어 제빵사가 이리저리 치대어 한쪽으로 밀어 둔다. 숨 좀 돌릴라치면 지옥 불같은 뜨거움 속에 가두어 두었다가 부풀어 오르고서야 겨우 꺼내어 온기가 가시고 나면 그제서야 옷을 입을 수 있다. 이런 이들이 디저트 가게나 커피 집에서 커피와 어울리는 케익으로 판매된다. 특별한 날 먹던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마음이 허할 때도 달콤한 것을 먹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여 입대하는 아들에게 친구들이 선물한 것은 입대를 위한 시험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고 그동안 누리던 민간인의 삶과 잠시 떨어져 군인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위로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들이 떠나고 사흘 동안 냉장고에서 케익을 꺼내어 들여다보고 다시금 넣어 두기를 반복 했다. 나흘째가 되어서야 한 조각 입에 넣는다. 물색없이 사르르 녹는다. 군 생활이 이처럼 달콤하지는 않아도 견디어 낼 수 있을 만큼의 고됨 이기만을 바란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