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내가 생각하는 것을 오해 없이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대화는 그 자체가 생물(生物)이 되어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격려가 된다. 일상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알게 되면, 그 기쁨 역시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최근에 나도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다.

 서양화가 박서보(1931~)는 나이 스물여섯에 반국전(反國展)을 외치며, 안정된 주류의 길을 버렸다. 다양성이 결여되고 국전(國展)이 한 사람의 작품처럼 획일화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에 대해 분명하게 의견을 개진하며, 화살처럼 쏟아지는 비판과 견제를 꿋꿋이 맞서고, 예술가의 길을 걸어갔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밤에 지나가다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모함으로 취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신문 원고료로 구공탄을 한 장 사거나 쌀을 홉으로 사먹으며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술학도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그가 왜 이러한 길을 선택한 것인가? 그는 이에 대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고 답했다. 그는 가르치는 후학들에게 세 가지를 전했다. 첫째, "절대로 역사에 빚을 지지 마라." 이는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은 하되 역사가 만들어 놓은 길로 편안하게 가지 말라는 의미이다. 둘째, "네 스승을 닮지 말라 이다." 스승의 분신이이 되지 말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들라는 것이다. 셋째, "서로를 닮지 말라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개성과 세계가 있는데, 그것을 인식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남의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훌륭한 커리어로 인정받은 사람이 다른 의견을 제기한 후배를 격려하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존경스럽다. 올바른 길을 선택한 그가 성실하고 묵묵히 대가를 치른 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가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과 이사장을 맡으며, 한국현대미술의 다양성이 획득되고, 과감히 신인을 위한 열린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그들의 경력만큼 굳어 있는 관점의 한계가 있음을 직시하고, 젊은이들의 엉뚱한 발상을 수용하며, 신인 화가들의 재능이 전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을 막았다. 따라서 '앙데팡당'이라는 심사를 안 받고 전시해주는 제도를 마련했다. 그리고 화가 이름이 아닌, '앙데팡당'에 걸린 작품 중에서 좋은 작품을 비평가들한테 고르게 해서 국제 비엔날레에 출품하도록 했다.

 시대정신으로서 '치유'를 이야기 하고, 미술 자체를 우상시 하지 않으며, '나를 비워내는 인격적 차원과 가치관'을 논하며, 안전한 길을 버리고, 자신의 후배와 제자들이 역사와 스승과 동료의 틀에 맞춰진 복제화가가 되는 것을 막고, 자유롭게 자신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한 그의 삶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나의 신념에 따라 인격적 성장을 바탕으로 올바른 나의 길을 가고자 노력했던 내 마음이 지치고, 나약한 내 자신을 목격했을 때, 박서보 화가의 작품과 그의 삶을 알게 된 것이 매우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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