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일본과 호주의 문화산업 육성정책을 지켜본 영국은 스스로 세계 최강의 문화산업 강국이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바로 ‘영어’였다. 산업혁명을 주도해낸 축적된 기술력과 문화시민 수준 또한 갖추었고, 세계 금융의 중심이다. 문화산업화에 최적인 요소가 다 있었다. 영국은 이 정책을 ‘창조경제’라 명명하고 집중 육성에 나섰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007시리즈의 부활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여성 그룹 스파이스 걸스는 영국 국기를 전면에 걸었다. 2012 런던 올림픽을 적극 유치 개최했다. 축구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켜온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러시아, 미국, 중동 등 해외 거대 자본에 개방했고, 곧이어 세계 최강 리그로 부활했다.

영국 문화산업 육성정책의 특이점은 육성 분야를 보다 구체화했고, 거점화했다는 점이다. 영국의 창조경제 원심형 모델에서 광고, 유물, 건축, 공예, 디자인, 패션, 영화, 음악, 미술, 출판, 소프트웨어, 방송을 집중 육성문화 산업 콘텐츠로 정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거점 도시 중심의 육성정책이다. 최초 선정한 9개 도시는 광고의 맨체스터, 건축의 슬라우와 브리스톨, 미술과 유물의 캠브리지, 옥스퍼드, 브링톤, 베쓰, 출판의 에딘버러와 길포드다. 이후 영화/영상/방송의 글래스고우, 패션/디자인/소프트웨어/게임의 런던, 음악/게임과 e-러닝의 쉐필드, 소프트웨어/게임의 밀톤 등 연이어 도시 거점화를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도 뒤지지 않았다. 2002년 이미 CT(문화기술) 클러스터 지정 사업을 시행했다. 출판만화의 부천, 영상/게임의 대전, 디지털영상의 전주, 디자인/캐릭터의 광주, 애니메이션의 춘천, VR의 경주, 그리고 에듀테인먼트/게임컨텐츠의 청주가 선정되었다. 이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청주 문화산업단지다. 전통 교육도시로서 교육 인프라와 인적 자원의 풍부함, 그리고 교육과 엔터테인먼트가 융복합한 문화산업에 최적 환경이 청주의 선정 이유였다.

특히, 문화산업단지가 위치한 청원구 안덕벌 지역은 국내 최고의 문화 예술 인적 자원의 보고(寶庫)라 평가받았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청주는 어떠한가? 공예 비엔날레, 동부 창고, 국립현대미술관 등 인프라는 늘어났지만, 정작 인적 자원은 사라져 갔다. 20여 년 전 문화/예술인은 어느새 세월이 지나 5~60대 되었고, 후세 없이 중장년 예술인만 덩그러니 남았다.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없다. 교육 인프라는 하루가 다르게 쇠퇴했다. 청주 주요 3개 대학의 예술 계열 전공은 사라져갔고, 음악, 무용 등 학과는 흔적조차 없어졌다.

대형 공간은 일부 신설되었지만, 정작 생산력 높은 젊은 청년들의 예술공간은 없고, 특정 기득권 세력의 전유 공간만 조금조금 늘어났다. 문화산업은 마구 놀아야 발전할 수 있다. 유흥가 말고는 젊은이들이 건전하게 마음껏 놀 곳이 없음이 청주의 가장 큰 문제다. ‘꿀잼 도시’ 아닌 ‘노잼 도시’라고들 한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은 있다. 디자인 등 일부 분야는 여전히 건재하고, 지역 대학 역시 잘 버티고 있다. 시민과 지자체, 대학이 서로 협력하여 문화산업 인재 육성을 위한 정책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구체적 사업계획을 개발, 집중 육성한다면 청주는 진정한 문화 도시로 굳건히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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