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브라질 현대 음악가 에이토르 빌라로보스(Heitor Villa-Lobos, 1887 ~ 1959)가 첼로를 위해 작곡한 <블랙 스완의 노래>(1917)는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에 나오는 <백조>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작년 가을 ‘앙상블 모멘텀’ 콘서트에서 김승운의 첼로와 이상남의 피아노 연주로 빌라로보스의 곡을 처음 알게 되었다.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는 1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13번째 곡인 <백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사자, 암탉과 수탉, 캥거루 등 다양한 동물과 피아니스트, 화석을 테마로 하는 1곡부터 12곡, 그리고 14번째 곡인 피날레는 대부분 빠르고 경쾌하며 어린이를 위한 곡처럼 천진난만한 느낌을 주는 것에 비해 <백조>는 시작부터 차분하고 다른 곡들과 달리 우아하고 진지한 분위기의 곡이다. 두 대의 피아노와 한 대의 첼로를 위한 곡으로 작곡된 <백조>에서 첼로의 선율은 백조의 우아한 자태와 호숫가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의 동선이 만드는 실루엣을 그린다면 피아노 반주는 잔잔한 물결의 호수를 표현하는 듯하다.

<블랙 스완의 노래>에서도 첼로의 멜로디에서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블랙스완의 자태와 여유로운 움직임이 느껴진다면 피아노의 조밀한 음률에서는 시시각각 흔들리며 반짝이는 달빛 조각 파편들의 잔물결이 그려지는 듯하다. 첼로로 백조의 자태와 움직임을 담아내고, 피아노로 호수의 물결을 표현하는 것은 두 곡이 비슷하지만, 생상의 곡에서 우아하고 잔잔하면서도 때로 높이 날아오르는 백조의 비상 같은 가녀린 높은 선율로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내려와 감성적 해소를 느끼게 해준다면 빌라로보스의 곡에서는 멜로디가 고조되고 있는 도중에 반전되는 다소 불안정한 선율이 멜랑콜리한 감상과 미지의 신비로움으로 오랜 여운을 남긴다.

백조하면 흰 백조가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블랙 스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다. 블랙 스완 현상이라는 개념도 원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적인 것을 표현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실제로 검은색 백조가 발견되고 난 뒤로는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일 그것이 실현될 경우 미치는 파급효과가 엄청난 현상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빌라로보스의 <블랙 스완의 노래>도 크고 웅장한 음이나 압도적인 화려한 스케일은 아니지만 귀에 익지 않은 낯선 음률과 흔히 접해보기 어려운 신비로운 분위기의 드물고 특별한 매혹으로 우리 내면에 스며들어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마음 속 아련한 추억의 순간들, 보이는 세계 그 너머 미지의 정감으로 파문을 일으킨다.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할 수 없는 그 나라 언어만의 고유한 단어의 뉘앙스를 소개하고 있는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라는 책에서 웨일스어 ‘히라에스hiraeth’라는 단어를 소개하는데, 이 단어에는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 과거 속으로 사라진 곳에 대한 향수, 혹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쓸쓸한 마음”이라는 뉘앙스가 있다고 한다. 히라에스의 뉘앙스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빌라로보스의 곡과 같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