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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의 일생김복회 전 오근장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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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3  14: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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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회 전 오근장동장] 밥이 다 됐다는 전기밥솥의 알람 소리에 오늘도 부스스 눈을 뜬다. 퇴직을 하고도 주방은 여전히 어머니의 권역이다. 미수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며느리에게 맡기기가 불안하신지 여전히 주방을 못 벗어나신다. 시어머님과 40여년이 다되도록 함께 살면서 항상 그러려니 하고 지나온 날들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딸이 없는 엄니는 필자를 며느리로 맞아들일 때부터 참 좋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며느리 도시락을 싸주랴, 당신의 손자들 키우시랴 몸 고생, 맘고생을 참으로 많이 하셨다. 어머님의 평생을 생각할 때마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항상 가슴이 먹먹하다.

예전에 아버님이 직장을 다니실 때도 아버님께 생활비를 타서 생활하셨기 때문에 항상 여유가 없으셨단다. 막내를 임신했을 때는 갑자기 뭔가가 하도 먹고 싶어 큰애를 시켜 아버님 직장에 가서 용돈을 받아 오라고까지 하셨단다. 많은 주부들이 살림을 하면서 여윳돈을 모아 목돈을 마련하는 그 재미조차 누려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당신이름으로 된 통장하나가 없다는 소리에 너무 속상해 그 당시 충북은행에 가서 어머님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백만 원을 넣어드렸다. 큰 맘 먹고 해드린 통장을 들고 좋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그 통장을 그대로 가지고 계시다가 지금 살고 있는 새 집을 지었을 때, 떡하니 김치 냉장고를 사가지고 오셨다. 새 집을 지어 기쁜 마음에서도 그랬겠지만 좀 더 의미 있게 쓰시고 싶었을 게다. 이십년이 된 그 김치 냉장고는 지금도 주방의 살림살이로 자리 잡고 있다.

필자가 학업에 대한 미련이 많아 야간대학을 다닐 때도 어머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다. 졸업식 날 엄니 덕분에 졸업하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을 직접 하지 못하고 용돈과 함께 감사의 편지로 대신했었다. 수시로 고마움을 표현해야 함에도 그걸 못하는 내 성격이 야속해, 지난 퇴임식 인사에선 작정하고 많은 축하객들 앞에서 공표하듯 말했다. 엄니께 그동안 감사했던 많은 것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이생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인연은 전생에 처와 첩의 관계였다고 한다. 하여 고부 관계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고도 한다. 수필가 이신구씨는 부부의 만남은 전생의 한을 이생에서 사랑과 환희로 풀고, 자식과 부모는 전생에 못다 갚은 짐을 원 없이 다 덜어주라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 어머님과 필자는 전생에 처와 첩의 관계가 아닌 자식과 부모 관계였지 싶다.

요즘 연세가 드셔서인지 간혹 깜빡깜빡 잊는 일이 잦아지다보니 늘 혼자 맘속으로 기도를 하신단다. 지금까지 며느리에게 하는데 까지 해줬는데 그것 다 받고 간다는 말은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끝까지 잘 해주고 떠나고 싶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에 필자는 할 말을 잊는다. 가끔 보일러실에 불을 안 끄면 어떻고, 볼일을 보시고 변기에 물을 안 내리면 또 어떠랴, 끝까지 건강하게만 사시다 편하게 영원한 어머니의 집으로 가시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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