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2장 부어라 마셔라
| ▲ <삽화=류상영> |
5월 초인데도 소매가 없는 무명 조끼 차림에 밀짚모자를 쓴 이 씨도 장기팔처럼 염색 꺼리도 없는데 아깝게 장작만 소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흙벽돌을 쌓아 만든 화덕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바람이 없는데다 햇볕이 좋아서 장작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화덕 앞은 뜨거웠다. 눈살을 찌푸리고 불이 붙어 있는 장작 몇 개를 꺼내서 화덕 옆으로 치웠다. 물이 담긴 군용 휘발유 통을 들어서 장작에 붙어 있는 불을 대충 껐다.
"다 알고 있으믄서 딴 소리 하고 있구먼. 아! 표를 단 한표라도 더 긁어 모을라고, 탁베기며 고무신짝을 돌리는 판국이잖여. 이를 때 순경들이 염색을 안한 군복을 입고 댕기믄 안된다고 선전을 하믄 워티게 되겄어?"
"츠, 난 또 머라고."
장기팔은 맥이 빠진다는 얼굴로 털썩 주저앉으며 튀밥전을 바라본다. 튀밥전에는 세 명이 앉아서 부지런히 튀밥기계를 돌리고 있다. 화덕에서 나오는 연기 그름에 세 명 모두 연탄을 찍어 파는 사람들처럼 얼굴이 시커멓다. 튀밥을 튈 때마다 뒤집어 쓴 하얀 튀밥부스러기가 까치집을 지은 머리카락에 눈송이처럼 앉아 있다. 눈썹에도 튀밥부스러기가 하얗게 묻어있다.
별일여! 하루 두 끼도 먹기 심든 판에 튀밥을 튀러 오는 이들은 대관절 워티게 사는 이 들인지 모르겄구먼. 생겨 처먹은 걸 보믄 우리들 하고 별로 틀려 보이지도 않는 족속들인데…….
튀밥전을 볼 때 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한 가지 있다. 요즘 같은 춘궁기에 하루 세끼 챙길 수 있는 것 만해도 큰 복이다. 그런데도 장날이면 장날마다 튀밥을 튀기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걸 보면 신기하고 궁굼하다 못해 목젖이 쩍쩍 달라붙을 지경이다.
"그라고 보믄 장씨 팔자가 상팔자여. 나 같은 놈은 여기다 목숨을 걸고 살고 있응께 당장 오늘 돈을 못 벌믄 식구들 끼니가 걱정이지만 장씨야 안 그렇잖여. 자식 형제 죄다 서울서 돈을 벌고 있응께 달달이 다믄 얼매씩이라도 부쳐 줄 거 아녀."
장기팔처럼 튀밥전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던 이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속모르는 남들이 보믄 그릏게 생각할 수도 있겄지……"
장기팔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으며 이씨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학산장, 내일은 양산장 모레는 영동장 글피는 영동장 그 글피는 무주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비록 큰돈은 못 벌지만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은 어렵지는 않다.
이것들은 밥이나 안굶고 사는지 모르겄구먼.
먹고사는 것이야 몸뚱이가 성하니까 그럭저럭 해결한다고 하지만 자식들 생각을 하면 맑은 하늘도 늘 어둡게 주저앉는다. 자식이 많은 것도 아니다. 달랑 형제뿐인 자식들이 돈을 벌어서 성공하겠다고 서울로 올라 간지 벌써 3년이 넘는다. 그런데도 무얼 해서 먹고 사는지 이렇다 할 자랑이 없다.
명절 때 한 번씩 내려오면 해마다 대답이 틀리다. 어느 해는 베를 짜는 공장에 다닌다고 하고, 어느 해는 장사 기술을 배울 욕심으로 잡화점에 취직을 했다고 하는가 하면, 연탄 배달을 한다고 대답하던 해도 있었다. 첫째 놈은 성냥공장 다닌다고 하는데, 뒷간에 다녀 온 둘째 놈은 철공소에서 솨 다루는 일을 배운다고 대답할 때도 있었다. 그 대답도 자신 있게 하는 것도 아니다.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이맛 저맛도 아닌 목소리로 대답하는 걸 보면 열일곱 살인 경훈이란 놈과, 제 형 시훈이 모두 하루살이로 끼니만 챙겨 먹고 있는 것 같다.<계속>

